이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극심하다. 중동 지역 국가로는 이례적으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사망자가 특히 많다. 미국의 오랜 대(對)이란 경제 제재로 이란 당국의 전염병 대처능력이 무너진 탓에 대규모 감염 사태를 초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에서는 25일 기준 총 95명의 코로나19 확진자와 1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슬람 시아파 성지 곰 지역에서 지난 13일 첫 확진자가 보고된 이래 연일 감염자가 늘고 있다. 사망자 숫자로 보면 코로나19 발원국인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다. 지난 13일까지 이란에서 50명 이상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도 있다. 사이드 나마키 이란 보건장관은 코로나19가 중국인 근로자와 파키스탄 출신 순례자들을 통해 이란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중동 지역 국가들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속 발생하고 있다. 이들이 대부분 이란과 연관됐다는 점에서 이란발(發) 바이러스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각국 당국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24일 이라크, 쿠웨이트, 오만, 아프가니스탄, 바레인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왔다. 이들 국가는 확진자 모두 최근 이란을 다녀왔다고 밝혔다. 중동 지역 시아파 맹주국인 이란에는 시아파 성지가 여럿 있어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 다수의 순례자와 종교 유학생들이 유입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란이 중동 지역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온상으로 부상한 이유로 미국의 오랜 경제 제재를 꼽고 있다. 경제 제재로 인해 의료장비나 의약품 수급마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미국 예일대 공중보건대학원의 첸시 조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뷰에서 “미 정부가 이란의 핵개발을 이유로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이란 경제와 의료보건체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며 “수십년에 걸친 제재는 이란의 의료장비 공급 부족 상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SCMP도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50명당 1명꼴로 숨진 데 비해 이란에선 5명당 1명이 숨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란의 의료시스템이 온전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중동 국가들이 이란을 오가는 항공편, 해상 운항편을 잇달아 차단하면서 이란의 고립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면 풀릴 한시적인 고립이긴 하지만 이미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으로서는 궁지에 몰릴 수 있는 조치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