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60대 주부 A씨는 이커머스 이용 경험이 거의 없다. 대형마트와 창고형 할인마트를 무리 없이 이용해 왔지만 이커머스는 너무 어려웠다. 계정을 만들어 몇 번 구매를 해도 정확한 사용법을 몰라 아들에게 구매를 부탁해 왔다. 하지만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마스크 등 방역용품과 찬거리를 스스로 찾아다닌다. A씨는 “주변 곳곳에서 확진자가 나왔는데, 그저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시장을 돌아다니는 것도 겁났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스마트폰을 붙잡고 산다. 마스크는 결국 못 샀지만, 찬거리 정도는 나가지 않고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 유통산업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려고 노력했다면 언택트(비대면) 서비스 관련 산업은 앱과 결제 프로그램을 제외한 모든 접점을 없애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소비자들이 최대한 접촉을 줄이려 노력하는 코로나19 국면 속에 언택트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소비자들은 코로나19 감염 우려 속에 무인 상점과 배달, 이커머스 서비스에 몰리고 있다. 자사 서비스를 한 명이라도 더 경험시키토록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온 업계는 갑작스럽게 성장 기회를 맞았다. A씨처럼 중장년층이 기술 소외를 극복하고 유입되는 조짐도 보인다.
신세계그룹 이커머스 SSG닷컴의 매출은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전주 대비 45% 늘었다. 19일은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사태가 급격히 악화한 시점이다. 특히 이 기간 식품군 매출이 전주 대비 87% 폭증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통조림 매출은 268% 치솟았고 쌀 187%, 라면 175%, 생수 116% 각각 늘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가는 등 대규모 점포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통조림과 라면, 쌀 등 간단히 구매할 수 있는 식품들도 이커머스에서 사들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새벽배송 서비스의 원조 격으로 소비자가 최소한의 접촉으로 물건을 사들일 수 있는 마켓컬리도 이 기간 신선식품과 밀키트, 간편식을 중심으로 매출이 30% 올랐다.
언택트 소비는 이미 최근 몇 년간 빠르게 영역을 넓혀 왔다. 밀레니얼세대가 사람보다 디지털 기기를 더 익숙하게 여기는 등 비대면 접촉을 선호하면서 이들의 특성에 맞는 서비스가 필요했다. 키오스크 점포는 가장 먼저 대중화된 언택트 서비스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점원은 상주하지만 주문은 키오스크를 통해 받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카페가 인기를 끌었다. 편의점업계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마존고’ 같은 무인매장을 시험 도입하고 있다.
마켓컬리가 열고 쿠팡이 확산시킨 ‘새벽배송’은 언택트 소비의 신기원을 이뤘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소비자들은 매장을 아예 방문할 필요가 없고, 때에 따라서는 배송 직원조차 만날 필요가 없다. 우아한형제와 딜리버리히어로, 메쉬코리아 등 배송 역량을 갖춘 기업은 편의점, 프랜차이즈 카페 등 기존 유통 업체가 배송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도록 도우며 언택트 소비를 퍼뜨리고 있다.
물론 넘기 어려운 장벽도 있었다. 언택트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기업이 직접 고용하는 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키오스크 등 간단한 기기도 다루기 어려워하는 일부 중장년층을 기술 소외에 빠뜨린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단점들 때문에 언택트 소비에 거부감을 느끼는 소비자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언택트 소비가 꼭 필요한 상황이 주목받았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감염병 확산기에 언택트 서비스가 생필품 공급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SSG닷컴은 최근 자사 배송 서비스인 ‘쓱배송’ 처리 물량을 지역별로 최대 20%까지 늘리기로 했다. 서울·경기지역 대상 새벽배송도 기존 대비 50% 확대한다. SSG닷컴 관계자는 “필요한 물건을 적재적소에 배달함으로써 소비자 불안을 최소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언택트 서비스에 남아 있던 최소한의 접촉 요소마저 줄이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쿠팡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고객의 불안감을 덜기 위해 당분간 모든 주문 물량을 고객 문 앞에 두거나 택배함에 맡기기로 했다. 소비자들이 배달 노동자들과의 접촉도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요기요에 따르면 배달 요청 사항에 ‘집 앞에 두고 갈 것’을 요구한 주문자 비중은 전월 대비 8% 늘었다.
언택트 서비스가 무사히 자리잡는 데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기성 세대가 언택트 소비에 일부 유입된 것은 맞지만 여전히 대다수가 기술 소외 현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다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다시 적응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생필품 소비가 일시적으로 늘었을 뿐 소비자 성향은 다시 과거로 복귀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업계는 급격한 매출 상승에도 표정 관리를 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 매출이 올랐다는 사실이 주목받는 게 솔직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