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는 ‘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8년간 한일 관계가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연극은 포기 않고 만나면서 신뢰를 쌓아왔어요.”
일본 연극평론계 거두 오자사 요시오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21일부터 3일간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에서 열린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2002년 시작돼 9회를 맞은 이 공연에 대해 그는 “이 행사로 일본 내 한국 작품에 관한 관심이 크다”며 “표가 유료인데도 매진된다. 연극 ‘목란언니’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덧붙였다.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 그만큼 깊어지는 게 사람 관계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문화교류 단절은 흔히 외교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곤 한다. 이 공연은 요동치는 한일정세 속 20년 가까이 연극을 통해 서로의 체온을 전해온 민간 교류 사업이다. 한일연극교류협의회(회장 심재찬)와 일한연극교류센터(회장 요자사 요시오)가 격년마다 서로의 희곡을 번역·출판하고 낭독공연을 올리는데, 지금까지 양국 45편의 현대 희곡이 각각 소개됐다.
올해도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이번엔 노기 모에기 작가의 ‘다스 오케스터’(연출 정진새·사진), 야마모토 스구루 작가의 ‘그 밤과 친구들’(연출 민새롬), 시라이 케이타 작가의 ‘Birth’(연출 박근형)이 선보였다. 독일 나치의 예술 탄압부터 보이스피싱까지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소재의 작품들이었다.
23일 심포지엄에서는 연극 전문가들이 양국 연극 현황을 두고 토론을 펼쳤다. 공공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연극계는 제작 과정에서 지원금 문제에 늘 시달린다. 연극계가 정치적 환경에서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도 상황은 비슷하다. 연극제작자 오타 아키라는 지난해 가을 일본에서 ‘평화의 소녀상’ 등 전시가 중단됐던 미술 행사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트리엔날레에 문화청 조성금 전액이 교부되지 않았고, 지난 낭독공연 조성금 역시 끊겼다. 지원금 신청 요강에는 거부 요건으로 ‘공익성의 관점에서 부적당한 경우’라는 문구가 추가됐다”면서 “이는 한국 박근혜 정권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나 일본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검열을 떠올리게 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한일 연극 공동제작 등 민간교류가 더 활발히 이뤄져 공공교류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래 10회를 목표로 기획된 낭독공연 행사는 양국에서 1회씩을 더 선보이고 2022년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이성곤 한일연극교류협의회 부회장은 “연극 정보 공유센터 구축 등 낭독공연이 끝난 이후의 교류 모델에 대해서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