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뒤면 삼일절이다. 항일의 뜻을 되새기고 봄맞이도 겸할 수 있는 여행지라면 전남 완도의 소안도(所安島)가 제격이다.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 꼽힌다. ‘편안히 살 만한 곳’이라는 이름과 달리 소안도는 일제강점기에 그리 편안하지 못했다. 인구가 6000여 명밖에 안 되는 섬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 유공자가 20명, 기록에 남은 독립운동가가 89명이 날 정도로 ‘저항의 섬’이었다.
소안도는 완도에서 남쪽으로 약 18㎞ 떨어져 있다. 본섬 소안도와 부속섬 당사도·횡간도·구도 등 4개 유인도와 6개의 무인도로 이뤄졌다. 소안선착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 표석을 만난다. 소안항에서 소안항일운동기념관으로 향하는 길에 도열한 수많은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린다. 완도군이 소안도에서 365일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면서 ‘태극기의 섬’이 됐다.
남쪽과 북쪽 2개 섬 사이를 연결하는 초승달 모양의 사주에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이 자리한다. 소안항일운동기념탑, 복원된 사립소안학교가 있다.
기념탑은 검은 돌과 하얀 돌로 어우러진 높이 8m, 폭 4m의 크기이다. 검은 돌은 일제탄압, 햐얀돌은 백의민족을 상징한다. 세 갈래로 솟아오른 탑은 일본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상징한다. 기념관 영상실에서는 소안도의 항일운동 역사를 자세히 소개하고 전시관에서는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분들의 얼굴조각상을 볼 수 있다.
전시관 중심에 당사도등대 습격 사건의 디오라마가 펼쳐진다. 1909년 1월 일본은 본국을 향해 먼 바다로 나가는 상선을 돕기 위해 당사도에 등대를 세웠다. 하지만 등대가 생긴 지 2개월 만에 소안도 출신 동학군 이준화 등이 해안 절벽을 기어올라 일본인 등대원 4명을 죽이고, 등대를 파괴했다.
전면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 소송도 같은 해 시작됐다. 왕실에 세금을 내는 궁납전이었던 소안도를 1905년 친일 매국노 이기용이 사유화하자 소송을 벌여 13년 법정투쟁 끝에 승리를 거뒀다. 그 기쁨은 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소안도 주민이 자발적으로 모금 활동을 벌여 당시 1만원이 넘는 거액이 모였다. ‘사립’을 강조하는 이유는 마을 주민이 스스로 세웠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사립소안학교는 2003년 복원돼 평생학습원과 작은도서관으로 운영 중이다.
소안도는 풍광도 빼어나다. 섬의 동쪽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멸종위기종 2급인 노랑무궁화 ‘황근’ 자생지가 있는 월항리다. 미라리에는 몽돌이 예쁜 미라해변과 미라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339호)이 한데 어울린다.
해맞이일출공원이 있는 부상리를 지나 섬 서쪽으로 향하면 진산리다. 바다 건너편 당사도 왼쪽 끄트머리에 당사도등대가 보인다. 우뚝하게 선 새 등대 옆 작은 옛 등대가 항일 독립운동 문화유산으로, 2018년 국가지정 등록문화재가 됐다. 물치기미전망대에서는 추자도가 보인다. 이어 맹선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340호)을 만난다.
소안도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곳은 가학산이다. 해발 359m로 높지 않지만 정상에 서면 사방팔방 ‘일망무제’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행메모
화흥포에서 ‘대한·민국·만세호’ 이용
보길도와 연결된 노화도 거쳐 1시간 소요
소안도에 가려면 완도 화흥포여객선터미널을 찾아가야 한다. 화흥포에서 소안항까지 동절기(10월~3월)엔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 10분까지 대략 1시간 간격으로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여객선이 운항한다. 여객선은 3척이다. 2015년 소안도의 항일정신을 기리기 위해 배에 태극 문양을 그려 넣고 ‘대한·민국·만세호’라는 애국적인 이름을 붙였다. 뱃삯은 편도 기준 1인 7700원, 승용차 2만원이다.
여객선을 타고 가다 보면 오른쪽에 횡간도가 있다. 섬 정상에는 사자 형상의 사자바위가 인상적이다. 사자바위 근처에 풍란 자생지가 있다. 횡간도를 지나면 섬 구도가 나타나고 노화도 동천항에 이른다. 노화도는 다리 하나로 보길도와 이어진다. 1시간 만에 소안항에 닿는다.
먹을 곳과 잠잘 곳은 소안면 소재지인 비자리에 몰려 있다. 1인분 식사를 팔지 않거나 저녁 일찍 문 닫는 곳이 많다. 비자리에 여관이 몇 곳 있고 펜션도 여럿 있다. 화흥포 인근 청해포구촬영장, 완도수목원 등도 들러볼 만하다.
소안도(완도)=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