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네 지인의 부친상이 있어 문상을 갔다. 장례식장 빈소에 예를 표한 뒤 곧바로 식당으로 들어가 이미 와 있는 다른 지인들과 만나 식사를 했다. 잠시 뒤 상주가 우리 테이블로 왔다. 지인들은 저마다 주머니에서 부조 봉투를 꺼내 상주에게 건넸다. 나도 상주에게 부조했다. 상주는 부조봉투를 받은 뒤 답례로 상품권을 하나씩 줬다. 장례식장에 오지 못하고 부조만 한 사람 것도 빠뜨리지 않고 상품권을 줬다. 부조봉투를 빈소에 있는 부조함에 넣지 않는다.
식사를 하는 중에 상주의 동생이 우리 테이블에 와 인사했다. 문상 간 지인 가운데 2명이 이 동생에게 부조봉투를 또 건넸다. 동생에게 부조한 문상객은 그 동생과도 절친한 관계였다. 그 동생은 형과 마찬가지로 상품권을 지인에게 줬다. 초상이 난 집의 형제 가운데 가깝게 지내던 형제가 있으면 이들에게 각각 별도로 부조를 한다. 제주도에만 독특하게 있는 개인 부조의 모습이다.
한 마을에 5형제가 사는 집에 초상이 나면 마을 사람들은 이들 5형제 모두에게 따로 부조를 한다. 같은 마을에 5형제가 사는 집이 또 있으면 이 집 5형제가 5형제에게 모두 부조를 했으므로 부조 봉투는 5×5=25, 모두 25개가 건너간다. 반대로 부조한 5형제 집에 초상이 나면 먼저 5형제 집에서 다시 25개가 돌아온다. 형제가 사는 집에 초상이 나면 5형제 집에서 5×2=10, 10개의 봉투가 건네지고 5형제 집에 초상이 나면 2×5=10, 똑같이 10개의 봉투가 돌아온다. 개인 부조는 장례뿐 아니라 결혼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제주에 이주해 처음 찾아간 상가는 동네 해녀의 초상이었다. 구좌읍 공설묘지에 묘지 작업을 끝내고 하관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주에게 문상하고 나니 안면이 있는 동네 사람들이 공설묘지에 있는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사를 하고 먼저 일어나자 누군가 커다란 비닐봉투를 내 손에 쥐여줬다. 안에는 참기름 한 통과 세제가 들어있었다. 상가의 답례품이다.
답례품은 대부분 생필품을 준비한다. 가짓수도 여러 개가 된다. 상주가 준비하는 것이 있고 외가, 사돈, 고인이 속했던 단체, 생전에 절친했던 이웃 등이 한 가지씩 보태기 때문에 많게는 5~6개에 이른다. 가정에서 유용하게 쓰일 물건들로 한다. 그러던 것이 상품권이 상용화하며 이를 대체하는 추세다. 도시 사람들의 변화가 빠르고 농어촌 시골은 아직 고유의 형식이 많이 남아 있다.
개인 부조 관행은 원래 여자들의 것이었다.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여자들은 상가 부엌에서 일하는 며느리, 딸들의 치마 허리춤에 하나씩 끼워주던 것이다. 물론 모두에게 따로따로. ‘네 사정 내가 안다’는 상부상조 또는 품앗이의 의미가 담겨있었을 것이다. 남자들의 개인 부조 관행은 오래되지 않았다.
제주에서는 이 같은 개인 부조가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제주인은 오늘의 수혜자가 내일의 기부자라는 호혜성 구조에 의한 상부상조 의례를 더 선호하는 듯하다.
박두호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