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공포가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고 사망자도 계속 늘면서 공공·민간 할 것 없이 사회 전체가 얼어붙었다. 개인 위생수칙을 지키며 당분간 ‘집콕’(집에 콕 박혀 있다는 의미)하면 사태를 넘길 수 있다고 믿었던 시민들도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38)씨는 24일 차로 20분 거리인 여의도 직장까지 걸어서 출근했다. 버스 타기가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개인 모임을 취소하고 손씻기만 잘하면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며 “회사에서 늘 마주치는 동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김씨는 회사 건물에 들어서면서 1차로 발열 검사를 했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갈 때 소독제로 손을 닦았다. 회의 시간에는 참석자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
사업장을 일시 폐쇄하는 곳도 잇따랐다. 직원 수가 많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택근무 등 예방 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만에 하나 있을 대규모 자가격리 사태에 대비해 비상계획도 검토 중이다.
LG전자는 인천사업장 직원 가족이 코로나19 확진자로 판정돼 해당 직원이 근무하던 연구동을 이날 하루 폐쇄했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구미사업장은 대구와 경북 청도에서 출퇴근하는 생산직 근로자에게 유급휴가를 주고 사무직 근로자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예정됐던 신입사원 채용 면접을 연기했다. 서울 서초구 본사에 외부인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됐고, 업무 관련 각종 회의는 대부분 영상회의로 대체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21일부터 건물 출입은 물론 회의, 출퇴근 버스 탑승 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전국에서 확진자가 가장 많은 대구·경북 지역에 대해선 출장을 자제토록 했다.
SK그룹 역시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 내 직원들의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유좌석제를 일부 변경했다. 사흘 이상 같은 층에 예약이 안 되는 설정을 해제해서 가급적 같은 층에 앉도록 권고했다.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은 직원들의 외부인 접촉을 줄이기 위해 출근 시간을 오전 10시 이후로 조정했다.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가 일제히 개학을 연기한 데 이어 학원들도 줄줄이 휴업에 들어갔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좀처럼 문 닫는 학원을 찾기 어려웠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번 주 휴원을 결정한 한 대형 재수학원에는 이날 문제집을 가지러 온 학생들의 발길만 이어졌다. 다른 어학원 관계자는 “서울시교육청이 휴원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어 따라야 할 것 같다”면서도 “휴원 시 발생하는 수강료 환불이나 보강 문제가 간단치 않아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동작구 노량진 일대 고시학원 관계자들은 “지난주 후반부터 학원에 직접 오는 수강생이 어림잡아도 30% 이상 줄었다”며 “시험을 앞두고 강의실이 이렇게 휑한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개학 연기 기간 외부인의 학교 출입을 금지하고 학교 전체를 방역하도록 했다. 수도권의 한 중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 오모(30)씨는 “교육부의 개학 연기 지침이 발표된 직후 학교별 방역 대책과 행정 업무에 관한 지시가 내려왔다”며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비상근무를 서고 있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개학 연기 결정으로 맞벌이 가정은 아이 봐줄 사람을 찾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장모(41)씨는 “개학 연기도 당황스러운데 오늘 하루 학원이 휴업한다는 문자를 4통 받았다”며 “그저 오늘만 무사히 넘기자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는 외출하고 집에 들어와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는 초등학교 돌봄교실이나 유치원 방과후 교실을 정상 운영해 양육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했지만 신청자는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관계자는 “개학 연기 기간 전국 1만4000곳 돌봄교실에 최소 1만4000명의 돌봄교사들이 투입된다”며 “교실은 운영하지만 이곳도 나름 단체생활이어서 학부모들이 보내기 꺼려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맞벌이 직원들은 가정 보육에 대한 회사 차원의 대처법을 요구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아이를 돌보겠다고 연차를 한꺼번에 소진할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 업무 공백을 계속 만들 수도 없는 게 사실”이라며 “육아 돌보미 등 외부인이 집을 드나드는 것도 불안한 상황이어서 막막하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종로구보건소는 이날부터 문을 닫았다. 보건소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일반 진료와 보건사업 등을 일괄 중단한다”며 “결핵 관리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지난 21일부터 구내 노인복지관과 도서관 등 공공시설 229곳을 무기한 휴관한 상태다.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가 관리하는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양천구 목동운동장·신월야구공원, 용산구 효창운동장 등도 모두 임시 휴관에 들어갔다.
황윤태 강주화 박구인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