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트럼프 효과’?… 일본서도 흥행몰이

입력 2020-02-24 18:32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가운데) 감독과 배우 송강호(왼쪽)가 23일 도쿄 지요다구 일본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올해 아카데미(오스카)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은 일본에서 관객 22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연합뉴스

“일본에서 ‘기생충’이 왜 이렇게 인기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제가 물어보고 싶네요.”

봉준호(51) 감독이 영화 ‘기생충’ 열풍이 불고 있는 일본을 직접 찾았다. 24일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봉 감독은 전날 도쿄 지요다구 일본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아카데미(오스카)상을 받아 영광이다. 수상 전부터 일본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뜨겁게 반응해준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달 10일 일본에서 개봉한 ‘기생충’은 지난 22일까지 일본 전역에서 22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하루 평균 5만명이 일본 영화관에서 ‘기생충’을 관람한 셈인데, 티켓 판매 수입은 총 30억엔(약 325억원)에 달한다. 일본에서 개봉한 역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이다. ‘기생충’의 현지 인기를 증명하듯, 기자회견에는 20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렸다.

‘기생충’이 전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빈부격차’라는 주제의식이라는 일부 평가에 대해 봉 감독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그는 “빈부격차는 어떤 의미에서 관객들에게 불편함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서 “직접적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부분은 예측을 뒤집는 스토리 전개, 특히 후반부 전개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영화를 통해 양극화의 실상을 폭로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우리들이 안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솔직하게 영화 속에서 표현하고 싶었다”면서 “어떤 메시지를 목소리 높여 주장하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영화적 아름다움 속에서 시네마틱한 방법으로 재밌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자리에 동석한 배우 송강호는 “2000년대에 한국영화가 일본에 많이 소개됐는데 이후 한일 간 교류가 적어진 것이 안타깝다”며 “이 작품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이 서로 성원해주는 시기로 돌아가면 기쁘겠다”고 말했다. 봉 감독에 대해서는 “음흉한 천재감독”이라며 “봉 감독이 원하는 걸 탐구해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게 힘들면서도 재미있다”고 전했다.

‘기생충’을 향한 전 세계적 관심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북미에서는 박스오피스 10위권 내 성적을 유지하며 꾸준히 관객몰이 중이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기생충’은 현재까지 북미에서 4894만 달러(약 597억원)를 벌어들였고, 글로벌 흥행 수익은 2억 달러(약 2495억원)를 돌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개 비난은 이 작품을 향한 현지 관심을 더 키우는 기폭제가 됐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콜로라도주 유세에서 “올해 아카데미 수상작은 한국영화였다. 도대체 뭐하자는 것이냐”며 미국영화가 작품상을 차지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현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반박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CNN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생충’의 수상을 축하하기보다 다양성을 혹평한 것은 순전히 반미국적 행위”라며 “미국은 기본적으로 용광로이고, 다양성을 찬양하며, 언론의 자유와 다양한 관점을 장려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해외 일부 국가에서 이미 개봉해 흥행 순항 중인 ‘기생충: 흑백판’의 국내 개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연기됐다.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26일로 예정됐던 흑백판 전환상영을 잠정 연기하기로 했다”며 “전환상영 일시는 추후 상황에 따라 알리겠다”고 전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