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어떻게 가겠습니까. 대구에 있어야죠. 훈련을 마친 선수들이 외출도 못합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행사가 많은데, 우리 임·직원들은 참석도 못해요. 저희도 답답합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긴급 이사회가 열린 24일 오후 2시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5층 사무국 회의실. 이사 12명이 둘러앉았어야할 회의실 탁자에 대구FC 조광래 단장의 자리만 비워졌다. 대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국내에서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는 곳이다. 정부는 대구·경북을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조 단장은 지금 대구에서 체류하고 있다. 연맹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이사회에 불참했다고 한다. 조 단장은 국민일보와 전화통화에서 “관중은 물론이고 선수단·프런트를 감염병의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 연맹 이사회에 앞서 대구 개막전이 가장 먼저 연기됐다”며 “권영진 대구시장이 외출과 이동을 최소화해 달라고 수시로 당부하고 있다. 프로 구단도 국민의 일원이 아니겠는가.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맹은 앞서 지난 21일 K리그 대표자 회의에서 오는 29일 대구(대구-강원), 3월 1일 경북 포항(포항-부산)에 편성했던 개막전 2경기를 우선 순연했다. 이날 긴급 이사회에서 같은 기간 인천, 울산, 광주, 전북 전주에서 개최를 준비했던 나머지 개막전 4경기의 연기를 의결했다.
K리그 개막전 전 경기 순연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연맹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될 때까지 개막전을 포함한 리그 일정을 잠정적으로 연기하기로 했다”며 “국제축구연맹(FIFA) A매치 데이 일정도 활용할 생각이다. 38경기를 모두 소화하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맹은 26일로 예정됐던 개막전 미디어데이도 취소했다. 지난해 유료 관중 237만명을 동원해 51%의 성장률을 기록해 ‘흥행 대박’을 터뜨리고 봄맞이를 준비하던 K리그가 코로나19의 ‘한파’에 휘말린 셈이다.
축구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종목별 프로·실업리그마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수천에서 수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은 감염병 확산에 취약한 밀집 공간이다. 경기장 출입로마다 문진표 작성과 열화상 카메라 촬영, 체온 검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 틈을 비집고 장내로 유입된 감염병은 촘촘히 배열된 관중석을 타고 순식간에 전파될 수 있다. 종목마다 일정을 축소·순연하거나 무관중 경기를 펼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춘추제로 진행되는 핸드볼 실업리그는 조기에 막을 내렸다. 대한핸드볼협회는 지난 23일 “잔여 리그 경기와 그 이후의 플레이오프·챔피언 결정전을 모두 취소했다”고 밝혔다. 당초 폐막은 4월로 예정됐다. 협회는 지난 22일까지의 성적으로 남자부에서 두산, 여자부에서 SK의 우승으로 2019-2020 실업핸드볼 코리아리그를 폐막했다.
리그 막판에 돌입한 프로배구 V-리그는 25일부터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될 때까지 무기한으로 모든 경기의 관중을 유치하지 않기로 했다. 연맹 관계자는 “장소 변경을 포함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무관중 경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여자부 최고 ‘빅매치’로 지난 2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1위 현대건설과 2위 GS칼텍스의 맞대결은 거의 만석을 채운 관중의 응원 속에서 펼쳐진 마지막 경기가 됐다.
농구장 역시 이미 텅 빈 객석의 적막에 둘러싸였다. 여자농구 WKBL리그는 모든 프로 종목 중 가장 빠른 지난 21일부터 무관중 경기를 펼치고 있다. 남자 농구대표팀은 지난 23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태국을 93대 86으로 잡은 2021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예선 A조 2차전 홈경기를 무관중으로 진행했다. 응원이 사라진 경기는 선수들의 기량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대승을 예상했던 경기에서 진땀을 뺀 남자 농구대표팀의 김상식 감독은 “무관중 경기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열릴 예정이던 국제대회도 예외없이 순연되고 있다. 대한테니스협회는 오는 3월 21일 제주도로 예정한 국제테니스연맹(ITF) 주니어 투어 개최일을 5월 17일로 연기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