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움츠린 시민들은 외식을 줄이고 ‘집밥’을 늘리고 있다. 특히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에선 시민 대다수가 외출 자제 상태다. 이들을 외부와 연결해 주는 유일한 ‘생계 고리’는 음식이나 식료품을 전달해 주는 라이더인데, 이들이 무방비 상태다.
“코로나19 사태로 대구 상황은 전쟁터나 마찬가지인데, 고객과 대면접촉을 피할 수가 없는 배달대행 라이더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책이 없어요. 고객도 라이더들도 감염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습니다.” (배달의 민족 대구지점 라이더 김용석(52)씨)
김씨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라이더들이 하루 평균 30~40건의 주문을 처리하고 있다고 24일 말했다. 라이더 1명당 최소한 30~40명의 고객을 대면하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 주문물품을 픽업하러 업장에 들어가게 되면 접촉자 수는 배로 늘어나게 된다. 그만큼 라이더들은 일반인에 비해 코로나 바이러스 노출 위험이 높고, 무증상 감염자가 될 경우 바이러스를 다른 곳으로 전파하게 될 우려도 크다.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가 SNS 채널(트위터,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을 대상으로 ‘배달’ 키워드로 빅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지난 23일 정보량이 7013건으로 지난달 25일 2879건 대비 3배가량 급증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배민 대구지점에서 코로나19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은 마스크와 손세정제 지급이 전부다. 이날부터는 그마저 중단됐다. 배민 대구지점이 정직원인 관제센터 근무자들을 재택근무토록 조치하면서 라이더들은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지급받을 곳이 사라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위험수당도 없다. 김씨는 “라이더들을 사람 취급도 안 하는 조치”라며 “이러다 라이더 1명이라도 감염되면 어떻게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배민 라이더 채팅방에선 “라이더를 소모품 취급하고 있다”는 호소가 넘쳐나고 있다.
한 라이더는 “확진자가 나온 건물에 가면 엘리베이터 타기도 무섭다. 대구에서 확진자가 얼마나 더 불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위험을 안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라이더는 “확진자가 나온 건물에 배달 갈 때 관제센터로 미리 연락을 달라는데 라이더가 그 건물들을 어떻게 다 기억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라이더의 호소는 대상이 불분명하다. 노동자이지만 개인사업자 신분이어서 업무지시의 주체가 모호하고, 배달 플랫폼 업체는 이들을 책임질 의무가 없다. 바이러스에 의한 국가적 비상사태가 플랫폼 산업의 허점을 드러낸 셈이다.
라이더들은 결제방식이 현금·카드일 경우 위험이 더 커진다고 불안해 했다. 김씨는 “현금이나 카드를 받아 계산을 하려면 어떻게든 접촉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데, 이 고객이 자가격리가 돼 있는 접촉자인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라이더들은 사태가 종료될 때까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면서 선결제를 하고, 음식은 문 앞에 두고 가는 ‘비대면 배달’을 정책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서울지역 배민 라이더 이모(41)씨는 “아직도 앱 선결제 고객보다는 현금·카드 결제 고객이 많다 보니 배민 측에서 그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 배민라이더스지회는 이날 “배민 관제센터 재택근무 정책에는 라이더 안전이 빠져 있다”며 “위험이 안정화될 때까지 현금·카드결제 및 음식물 대면전달을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