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싸움의 기술

입력 2020-02-24 04:02

A사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한 연예인이 해킹을 당해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날이었다. 기자가 관련 기사를 다 읽기도 전, B사 관계자로부터 뉴스 링크가 도착했다. A사 스마트폰의 보안 약점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다음 주, 두 회사는 미국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참가했다. 행사가 끝난 뒤 A사와 B사는 박람회 수상 실적 보도자료를 나란히 배포했다. 양사 수상 현황을 하나로 묶어 기사를 썼다. 저녁 무렵, A사 관계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자 가판 신문을 봤다고 했다. “B사 수치가 잘못 나와서요.” 잠시 혼란스러웠다. ‘B사 수치가 잘못됐는데 왜 A사가 전화를 하지?’

확인해보니 B사 수치 중 ‘1’이 ‘4’로 실제보다 높게 나온 부분이 있었다. 짐작했겠지만 A, B사는 삼성전자, LG전자다. 기자는 홍보 담당자들의 열성이 신선하게 느껴졌고, 사소한 부분까지 서로 견제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가만 보니 기업들은 이렇게 매시간 싸움을 벌이는 것 같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립자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기업이란 자유경쟁 체제에서 경쟁함으로써 생명을 갖고 성장할 수 있다.” 경쟁이 기업의 생명이란 것이다. 경쟁사의 존재는 기업에 혁신을 견인하는 동력이 된다. 실제 세계 시장에서 LG전자와 삼성전자는 다양한 가전 품목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한국을 가전 강국으로 만들어 왔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도리어 각사의 신뢰도를 갉아먹고, 자칫 명성에 먹칠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상호 비방 양상은 우려스럽다. 양사는 지난해 9월 독일에서 열린 가전 전시회 ‘IFA 2019’에서 신경전을 시작했다. LG전자는 IFA에서 8K(해상도 7680×4320) 삼성전자 QLED TV가 국제디스플레이계측위원회(ICDM)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이에 맞서 LG전자 제품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의 번인(burn-in·화면 잔상)을 지적하며 반격했다. 그렇게 해서 양사의 TV 경쟁은 글로벌 가십이 됐다. 화질 논란으로 시작된 두 회사의 비방전은 다른 가전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LG전자는 최근 공식 유튜브 채널에 자사 건조기와 삼성전자 제품으로 추정되는 타사 건조기를 비교하는 광고를 올렸다. 삼성전자는 LG전자가 시그니처 세탁기 광고에 넣었던 문구를 변용해 자사 세탁기의 완성도가 더 높다고 강조했다.

상대 제품을 깎아내리는 광고는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양사의 비방 광고전은 LG전자가 드럼세탁기와 건조기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가열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타사보다 우위에 있는 기술을 홍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경쟁사를 노골적으로 깎아내리고 비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양사 기업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자사 제품의 장점을 홍보하면 고객들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제품을 충분히 비교할 수 있다. 기업은 제품으로 말하면 된다.

동양의 대표적 병법서 ‘손자병법’의 핵심 구절 중 하나다. “백 번 싸워 백 번 다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책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책이다.” 기업이 참전하는 시장의 최종 승자는 소비자의 선택을 더 많이 받는 곳이다. 사사건건 다투기보다는 경쟁사보다 더 우수한 제품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기업이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다.

강주화 산업부 차장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