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항소심 재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을 1심보다 크게 인정하면서 같은 재판부에서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도 적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대대로 정권에 뇌물을 줘 왔으며, 그때마다 적극적으로 대가를 얻었다는 점이 굳어졌다는 해석이다. 이 전 대통령 사건과 이 부회장 사건은 뇌물을 받은 전직 대통령만 다를 뿐 뇌물을 건넨 삼성, 수사한 검사, 심판할 재판부가 모두 똑같다.
이 부회장 사건을 공소유지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 관계자는 20일 “이 전 대통령에게 선고된 징역 17년의 의미는 ‘삼성이 선대부터 뇌물 공여와 특혜 얻기를 반복해 왔다’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서도 적극적인 뇌물 제공이 있었다고 파악한다”고 말했다. 박영수특검 측은 삼성이 정권마다 반복적으로 뇌물을 건네온 점을 강조하는 의견서를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영수특검 측은 재판부가 삼성의 다스 소송비 부담과 2009년 12월 이건희 회장 특별사면을 연계해 바라본 점을 고무적으로 보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판결문에는 삼성 입장에서 이 회장의 특별사면이 필요했고, 결국 헌법상 사면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박영수특검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사건에서도 ‘어쩔 수 없이 줬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고, 적극적으로 편승해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인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농단 사건을 정경유착으로 규정했던 박영수특검 측은 그간 “삼성의 뇌물 전력은 이병철 선대회장 때부터 상습적으로 계속됐다”고 강조해 왔다.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판결에서 삼성 뇌물과 특별사면의 거래 성격까지 드러난 만큼 박영수특검 측은 또다시 삼성의 뇌물 전력, 대가성, 적극성과 관련한 의견서를 작성해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판결을 내린 당사자에게 해당 판결을 다시 읽어보라고 제시하는 격이기도 하다. 하지만 검찰과 특검은 ‘정권마다 뇌물을 건네고 특혜를 받아온 삼성을 과연 피해자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의식이 큰 상황이다. 재판부는 삼성 내 준법감시위원회 설치와 운영을 양형에 반영할 수 있다고 했고, 삼성 측은 재판부의 ‘치료적 사법’ 강조 분위기를 읽고 위원회를 얼른 설치한 상태다.
이 부회장 공소유지에 여념이 없는 박영수특검 측은 정 부장판사가 강조하는 ‘회복적 사법’ ‘치료적 사법’ 관련 논문을 찾아 분석하는 작업까지 병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실관계는 정리된 상태이며, 남은 것은 ‘과연 삼성이 피해자냐’는 데 대한 판단뿐이라는 말도 나온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 둘을 감옥에 보낸 것이 삼성”이라고 말했다.
구승은 구자창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