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중국에 다녀왔던 일용직 노동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잠복기가 끝난 뒤 움츠러든 인력시장을 다시 찾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일감을 주는 업소들은 예전과 달리 혹시 모를 감염을 우려해 매일같이 노동자들의 여권 검사를 진행한다. 일감이 넉넉지 않은 탓에 노동자 간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20일 새벽 직업소개소가 밀집해 있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에선 흰색 마스크를 쓴 채 일거리를 찾는 노동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지하철역 출구 앞에는 100여명이 세 갈래로 나뉘어 줄을 서서 일터로 가는 승합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 공장 등 일감을 주는 업소 측이 중국 교포(조선족)와 중국인, 한국인들을 구분해 데려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승합차 한 대가 도착한 뒤 현장 관계자의 여권 검사가 시작됐다. 중국 방문 이력 또는 중국 방문 후 2주가 지났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여권을 보여주지 않으면 일을 안 시킨다고 한다.
중국인 허촨(35)씨는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여권 검사를 꼭 한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일터에서 쫓겨난다”며 “일단 기본적으로 일감이 적어서 열흘째 일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최모(34)씨는 “여권 검사는 당연히 하는 거고, 중국 방문 이력만 있어도 일을 못한다”며 “나도 열흘째 허탕을 쳤다. 지난달 중국에 다녀와 2주가 지났다고 말해도 소용없다”고 토로했다.
일감이 적다 보니 비교적 일당이 센 중국 교포와 중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목공일을 기준으로 중국 교포는 일당 14만원, 중국인은 6만~7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나마 나오는 일거리도 일당이 싼 중국인들이 대부분 챙기는 것이다.
중국 교포 김모씨는 “쟤(중국인)들은 요즘 7만원이 아니라 5만원 헐값을 불러도 일을 다 챙기고 뺏어간다. 중국인 중에 불법체류자도 많은데 왜 안 잡아가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중국인 노동자 무리가 이 말을 알아듣고 김씨에게 다가와 중국어로 언성을 높이며 따졌다.
이 지역 직업소개소들은 최근 출입문에 공지문을 써 붙이기 시작했다. 공지문에는 ‘중국에서 입국한 지 14일 지난 분만 들어오세요. 마스크 착용한 분만 상담을 합니다’라는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또 가게 앞에는 예전에 없던 바구니들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바구니 안에는 일자리 리스트가 담긴 종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가급적 사람 간 접촉을 피하기 위한 조치다.
김명빈 인력사무소연맹 회장은 “대략 1주일 전부터 직업소개소마다 문 앞에 바구니가 생기기 시작했다”며 “일자리 찾는 노동자들은 물론 상담 직원들도 마스크를 쓴 채 업무를 한다”고 말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이날 구로구를 찾아 지역 내 중국 동포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일부의 혐오 표현으로 고통받고 있는 중국 동포들의 목소리를 듣고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최 위원장은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개인이나 국가 또는 이주민에게 책임을 묻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며 “하루 빨리 상황이 나아질 수 있도록 너 나 구별없이 모두의 안전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