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본격화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적자가 심화됐다. 국민건강과 안전을 위한 재원마련이 시급해졌다. 더구나 대책을 마련해야할 국회조차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져 대화의 물꼬를 처음부터 다시 터야할 상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재정당국은 대통령의 적극적 재정지원 약속에도 불구하고 먼 산 불구경하듯 여유롭기만 하다.
건강보험재정을 관리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공개한 2019년 건강보험 재정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은 2조8243억원의 당기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2018년에 이어 2년째다. 이에 따라 2018년 20조6000억원에 달했던 누적적립금도 17조7712억원으로 축소됐다. 건보공단은 “피부양자의 지역가입자 전환 등 소득 중심으로 건보료 부과제도를 개선하면서 보험료 수입이 확대된 데다, 보험급여비 명세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지출을 관리한 결과”라며 당초 예상보다 적자폭이 적었다고 평가했다.
보건복지부도 건보 당기수지는 적자지만, 문재인 케어가 완료되는 2022년뿐 아니라 1차 건강보험종합계획이 끝나는 2023년 이후에도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은 10조원 이상 유지하는 등 애초 계획한 재정 운용목표를 지킨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실제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19~2023년)’에서 보건당국은 2018년 1778억원의 적자를 보인 이후 2019년 3조1636억원, 2020년 2조7275억원, 2021년 1조679억원, 2022년 1조6877억원, 2023년 8681억원의 연속 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문제는 일련의 적자가 정부의 낙관적 전망에 기초한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등 야권은 물론 일부 시민사회단체와 보건의료단체들이 일제히 ‘문재인 케어’로 인해 누적적립금이 모두 소진되고, 본격적인 적자운영이 시작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보건당국의 예상적자가 건강보험료율의 꾸준한 인상과 재정당국의 국고지원 규모가 건강보험 예상수입액의 14%이상 이뤄질 것이란 전제 하에 설계된 점도 불안요소다. 예측을 상회하는 급속한 고령화와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부족 등이 적자폭을 더욱 키울 수도 있다.
이에 가입자(국민)와 공급자(의료계), 정책당국(보건복지부)이 건강보험정책을 심의·의결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가 지난해 정부계획보다 낮은 보험료인상률을 정하며 “2020년도 건강보험 정부지원을 14% 이상 확보하고,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으로 올해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부대의견을 추가로 달았었다.
그러나 20대 국회가 사실상 문을 닫게 된 지금까지 정부지원의 안정화 방안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기획재정부는 ‘해당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6%에 상당하는 금액을 건강증진기금(담뱃세)에서 지원해야한다’고 정한 법의 빈틈을 노리는 ‘꼼수’로 책임을 회피하며 쌓여가는 적자를 후세대에 떠넘기려는 행태만 보이고 있다.
기재부는 10여년 동안 예상수입액 산출과정에서 건강보험 가입자 확대 및 가입자 소득증가분을 임의로 누락시켜 지원액을 적게 편성하는 행태가 꾸준히 지적돼왔음에도 개선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건강보험 국고지원이 한시적으로 규정된 법조항의 개정을 수년째 요구하는 국민과 국회, 나아가 보건당국의 목소리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건강보험은 사회보험으로 가입자가 납부하는 보험료로 충당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정부지원은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한 보충재원 성격으로 건강보험 재정상황, 국가 재정여건 등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국고지원 확대에 대한 재정부담 과다를 우려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 보건의료계 한 관계자는 “국민에겐 세금 똑바로 내라며 정작 정부는 내야할 돈을 이런저런 변명으로 안내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하며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은 국가의 국민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는 것으로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장기적 재정적자 상황을 외면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오준엽 쿠키뉴스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