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콜센터 직원 김모씨는 출근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마스크나 손소독제 방송이 있는 날은 전화가 폭주하는 탓이다. 마스크 구매 실패 후 “가족이 폐렴에 걸리면 치료비를 보상하라”는 으름장부터 상품 구매와 취소를 반복하며 “전화를 끊지 말라”는 갑질에 냉가슴을 앓는다. 그는 “감정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제 자리 걸음”이라고 푸념했다.
최근 홈쇼핑 업계가 마스크와 손소독제 판매에 나서며 콜센터 상담사들의 남모를 고충이 늘고 있다. 주문 전화가 폭주하며 이에 비례해 상담사에게 구매 실패 화풀이를 하거나 막말과 폭언을 일삼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는 것. 홈쇼핑 웹과 애플리케이션(앱) 이용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홈쇼핑 콜센터는 고객을 상대하는 최전선이다. 주문부터 취소, 환불, 교환, 배송 등의 업무가 전화로 이뤄진다.
실제 A홈쇼핑에 따르면 평소 오후 1만8000건에서 2만건 가량의 주문과 상담전화가 걸려오지만 마스크 판매 방송이 진행된 날 오후 29만5000건의 전화가 쇄도했다. 이튿날에도 23만건의 전화가 몰렸다. 평소 대비 약 1400% 폭증한 수치다. 주문 전화 폭주로 구매가 어려워지면서 ‘진상 고객’도 나타난다. A홈쇼핑 관계자는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당시 5%가량은 악성 항의 전화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진상 고객도 각양각색이다. A홈쇼핑에 의하면 ▲만취 상태로 휴일에 전화를 걸어 30분 이상 마스크 구매 실패를 항의한 고객 ▲마스크 판매 방송 40분 전 전화를 걸어 이전 방송 상품 주문을 취소하며 판매 시간까지 전화를 질질 끈 고객 ▲우수고객이라며 자신에게만 다음 판매 방송을 알려 달라는 고객 등 다양했다.
진상 고객이 상담사의 업무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한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한통의 악성 전화가 오면 대략 10건 이상의 전화 상담을 놓치게 되고, 상담사 역시 스트레스로 업무에 지장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마스크 방송 날은 전화뿐 아니라 웹과 앱까지 다운됐을 만큼 사람이 몰렸다”면서 “정당한 항의가 아닌 구매 실패 불만을 터트린 고객도 상당했다”고 말했다.
최근 B홈쇼핑은 아예 마스크 판매를 생방송에서 온라인몰로 바꿔 진행했다. 최근 마스크 품절 사태로 콜센터와 게시판이 마비되며 크게 홍역을 치렀던 탓이다. B홈쇼핑에 따르면 해당 방송은 판매 시작 30분 전 문자메시지로 알려주는 알림 서비스 신청에만 10만명이 몰린 상황이었다. 당시 한 통신사에선 B쇼핑몰에 “예상대로 방송을 진행할 경우 주문 전화 폭증으로 통신 장애가 예상된다”는 권고까지 보냈다.
악성 전화에 콜센터는 블랙리스트 등을 통해 전화번호 차단에 나선다. 하지만 첫 전화부터 함부로 끊을 수는 없다. 고객의 얼토당토않은 요구에도 처음에는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응대해야 한다. 또 다른 홈쇼핑 관계자는 “상담사 인권보호를 위한 매뉴얼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면서도 “마스크 방송과 같이 급격히 주문이 늘어나는 상황에는 여러 고객들이 몰리다 보니 적용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서비스일반노동조합 이윤선 콜센터지부장은 “고객들이 모든 비난을 쏟아내는 곳이기 때문에 콜센터는 속된 말로 ‘욕받이 부서’라고 불린다”며 “주문이 폭증하는 상황에선 상담사의 고충은 더더욱 심해진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일부 고객들의 갑질은 계속되고 있다”며 “상담사들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인식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전진 쿠키뉴스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