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장 44절에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을 통해 땀을 흘리는 게 인간의 본질적인 성품이라는 내용을 살펴보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땀을 흘리라고 명령하셨다. 예수님도 땀을 흘리셨다. 큰 수고의 땀을 흘린 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 땀 흘리고 영광의 열매를 거두신 것이다. 우리도 수고의 땀을 흘릴 때 보석 같은 결실을 거두게 된다. 땀 흘리는 과정을 통해 몸은 건강해지며, 뿌린 대로 거두는 복을 누린다.
땀은 노동을 통해 흘려야 한다. 수고함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일생 하던 노동을 중단한 사람이 얼마나 급격하게 건강을 잃는지 수차례 목격했다. 필자의 부친도 70대 후반까지 환자를 진료했던 의사셨다. 그러다 병원을 그만두신 뒤에 몹시 힘들어하셨던 기억이 난다. 의욕도 잃고 마음마저 약해지셨다. 너무 안타까워 아버지께 내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하실 기회를 드렸다. 신기하게도 금세 활기를 되찾으셨다.
은퇴 목회자들도 비슷하다. 70세에 은퇴하면 정정하다가도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지고 무기력해진다. 심한 경우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사모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노인 고독과 소외 문제가 심각하다. 고독과 소외의 문제는 노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이유가 뭘까. 땀을 쏟을 만한 일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쓸쓸하게 지내는 노인들에게 아주 작은 노동의 기회라도 주면 굽은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이게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땀으로 빚어내는 노동, 즉 일하지 않고는 건강하게 살 수 없다.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 남들보다 돈을 적게 갖고 있어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땀 흘릴 만한 가치 있는 노동을 하지 못하면 아예 살 수 없게 된다.
예수께서도 땀을 핏방울처럼 흘리는 수고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기쁨의 열매를 거두셨다. 눈물과 땀, 피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단을 거두셨다.
예수께서는 왜 그토록 땀과 피를 쏟은 뒤 열매를 거두셨을까. 간단하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시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수고하는 땀을 흘린 뒤 열매를 거두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 땀을 흘리신 게 아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지 못해 땀을 흘리라고 하신 것도 아니다. 수고하는 땀을 흘린 뒤 결실을 거두라는 것이 예수의 성품이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의 성품이기도 하다.
예수의 성품은 우리에게도 있다. 노동을 통해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보람도 얻고 행복을 거둘 수 있다. 이런 성품을 우리도 갖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뜻밖의 장소에서 땀을 흘리려고 한다.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고 사우나에 앉아서도 땀을 흘린다. 물론 그 땀도 좋다. 건강에 나쁠 리 없다.
그러나 그런 땀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거룩한 땀이 아니다. 거룩한 땀은 수고하는 노동에서 얻어야 한다. 그래야 신성하다. 불로소득을 늘리려는 잘못된 발상을 버려야 한다. 땀 흘리지 않고 행복해지려는 꿈도 버려야 한다. 그런 발상은 자신 안에 내재한 본질 성품을 부정하는 것이다.
수고하는 노동을 통해 신성한 땀을 흘리는 사람이 자신의 본성을 따르는 사람이다. 건강의 축복을 받는 사람의 모습이 이렇다. 오늘 흘리는 땀은 여러분 안에 있는 성품이 몸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수고해 땀 흘리는 만큼 그리스도의 성품과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