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1일 예정했던 전국 검사장 회의를 잠정 연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이 우려되는 심각한 비상상황이라는 이유다. 추 장관은 감염 상황이 소강상태에 들어서면 그때 회의를 열겠다고 했다.
법무부는 19일 오후 “대구·경북지역에서 코로나19 확진자들이 발생하는 등 감염 경로가 확인되지 않는 심각한 비상상황이 발생했다”며 “감염 상황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이후 전국 검사장 회의를 반드시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사장들이 관할 지역에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는 결정이었다. 검찰은 그간 추 장관의 일방 통보로 열리는 검사장 회의에 명분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회의가 연기되면서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은 잠시 가라앉겠지만 불씨가 사라지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가 회의록 비공개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김태훈 법무부 검찰과장은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소관 주무과장으로서 회의록을 작성하겠지만, 검사장 회의록 전문을 공개한 전례가 없다”며 “요지 위주로 논의 내용이 전달되게 노력하겠다”고 썼다. 3년차인 구자원 수원지검 여주지청 검사가 “저 같은 검사도 회의 내용을 알게 해 달라”고 요청한 글에 대한 댓글 답변이었다.
검찰 구성원들은 김 과장의 의견에 크게 반발했다.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출신인 김수현 부산지검 형사1부장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전례가 없는 것인데, 전례가 없다고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글을 남겼다. 한상형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 검사는 “청년검사의 정당한 의문도 ‘조금 늦게 알권리’의 대상인 것이냐”고 되물었다. 앞서 추 장관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을 비공개하며 “조금 늦게 알권리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비튼 말이었다.
검사들은 “전례가 없다는 해명이 군색하다” “수사 보안이나 사생활 보호가 요구되지도 않고 오히려 국민과 검찰 구성원의 알권리가 요청되는 사안”이라는 댓글을 이어갔다. 관심이던 회의록 공개 여부가 검찰과장의 댓글 형식으로 전달된 점에 대해서도 지적이 있었다. “검찰과장이 공지사항도 아닌 댓글로 요지만 전달하겠다고 했는데, 법무부 스스로 검사장 회의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이냐”는 글도 동의를 얻었다.
특히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과장이 저연차 검사들의 글을 반박한 점은 격앙된 반응을 낳았다. 김 과장은 구 검사의 동기인 이수영 대구지검 상주지청 검사가 지난 18일 밤 올린 글에도 “기다려 보는 게 순서”라는 댓글을 남겼었다. 한 검사는 “검찰과장이 직접 ‘기다려 보는 게 순서’라 언급하는 것이 그 직분과 권한에 비춰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김 부장검사는 “그동안 법무부가 보여온 행태에 비춰볼 때 어떤 걸 믿고 기다려야 하느냐”고 했다.
추 장관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뒤 열 검사장 회의에서 ‘총괄기소심사관’ 도입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기소 여부를 결정할 때 공판검사가 수사검사에게 조언하는 일본 검찰의 ‘총괄기소심의관’ 제도를 본뜬 것이다. 회의가 열리면 좌천 검사장들의 작심발언이 터져 나올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김 과장은 이날 오후 “제가 올린 글이 내부의 자유로운 의견 표명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내외부의 지적이 있는 점을 감안했다”며 이 검사의 글에 남겼던 댓글들을 삭제했다.
구승은 허경구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