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린 전북 순천완주고속도로 상행선 내 터널에서 20중 추돌사고가 발생해 3명이 숨지고 43명이 다쳤다. 질산을 싣고 달리던 탱크로리차량(액체화물운송차량)이 터널 안에서 넘어져 승용차들을 덮쳤고, 뒤따르던 다른 탱크로리차량과 승용차가 줄줄이 부딪히면서 불이 붙었다. 특히 전복된 질산 탱크로리차량은 터널 바닥에 쌓인 눈과 얼어붙은 ‘블랙아이스’에 미끄러진 것으로 보인다. 불붙은 차량과 탱크로리차량에서 나온 검은 연기·유독가스가 터널을 가득 메우면서 사상자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소방청은 17일 오후 12시23분 순천완주고속도로 상행선 방향 남원 사매 2터널에서 차량 20대 규모의 추돌사고가 발생해 46명이 사상했다고 밝혔다. 3명이 숨졌는데, 이 중 한 명은 질산 탱크로리차량에 깔려 있던 승용차에서 뒤늦게 발견됐다. 애초 중상자가 6명으로 발표됐지만 정식 중증도 분류에 따라 1명을 뺀 나머지는 경상자로 분류됐다.
질산 1만8000ℓ를 실은 24t 탱크로리차량이 터널(총길이 712m) 진입 100m 구간에서 넘어지면서 앞쪽 승용차들을 깔아뭉개는 대형 사고로 번졌다.
전복된 차량이 2개 차로를 모두 막는 바람에 뒤따르던 다른 탱크로리차량 등도 피할 곳 없이 차례로 들이받았다. 뒤쪽 탱크로리차량의 추돌 충격으로 차량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터널 부근은 검은 유독가스로 뒤덮였다. 연쇄 추돌 차량들은 터널 밖까지 길게 이어졌다.
질산 탱크로리차량이 전복되기 전 터널에서는 대형 화물차와 일반 승용차들이 잇따라 멈춰서는 상황이었다. 세찬 눈보라에 터널 안까지 눈이 쌓이고 블랙아이스가 형성되면서 선두 차량이 도로 위에서 미끄러지다 이내 멈추기 시작했고, 뒤따르던 차량들도 연이어 급제동했다. 선두 차량들은 한참을 미끄러지다 멈춰서 간신히 추돌을 피했지만 질산 탱크로리차량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앞 차량들을 덮쳤다. 뒤이어 오던 탱크로리차량 2대 역시 멈추지 못하고 앞차를 연이어 받았다.
사고 차량들은 블랙아이스에 미끄러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블랙아이스는 도로 위에 녹았던 눈이 다시 얇은 빙판으로 얼어붙는 도로 결빙 현상을 뜻한다.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한국도로공사 측이 현장의 눈을 어제부터 치웠다고 하지만 잔설이 녹았다 터널 안으로 들어간 물이 얼면서 블랙아이스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현장 공무원과 목격자들도 “대설특보로 많은 눈이 내려 폭설 영향으로 터널 안 도로가 결빙된 상태에서 탱크로리가 전도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터널에 진입하기 전까지 차들에 묻어 있던 눈이 터널 안에 떨어져 녹아내리면서 일부 구간이 결빙돼 살얼음 상태가 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터널 안에선 차량 간 불길이 옮겨붙으며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가 터널 전체를 메웠다. 특히 맨 앞 탱크로리가 옆으로 전복돼 질산을 유출하면서 화재를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뒤이어 추돌한 탱크로리에서도 수산화나트륨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유독물질인 질산과 수산화나트륨을 직접 마시거나 만져 다친 사람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청 관계자는 “탱크 안 질산과 수산화나트륨이 대부분 불에 타면서 내뿜는 유독가스에 많은 사람이 노출됐다”며 “대피가 늦었던 인원 중에는 유독물질에 직접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질산은 강산성, 수산화나트륨은 공기 중에 노출되면 수분을 흡수해 뜨거운 열을 발산하며 녹는 유독물질이다.
소방 당국의 선착대는 화재 20여분 뒤인 12시51분에 도착했다. 눈길에 막혀 평소보다 출동이 늦어졌다. 당국은 오후 12시58분과 1시44분 각각 대응 1·2단계를 발령해 화재 진압에 나섰다. 터널에서 부상자들이 잇따라 나오고, 뒤에 도착한 구조대가 인명구조에 나서면서 초반 부상자 13명으로 파악됐던 사상자 수는 46명까지 늘었다. “전쟁이 난 줄 알았다” “시꺼먼 연기가 터널에서 쉼 없이 뿜어져 나왔다”는 목격담이 이어졌다.
소방 당국은 이후 소방차 총 43대와 소방관 125명을 동원해 탱크로리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독가스와 차량에 옮겨붙은 불길과 연기를 잡았다. 오후 4시47분 완진했지만 사고를 키운 질산 탱크로리차량은 전소됐고, 나머지도 심하게 그을리고 파손됐다.
사고로 고속도로가 통제되면서 주변 국도는 극심한 정체 현상을 빚었다. 한국도로공사는 북남원나들목(IC)∼오수IC(양방향, 13.7㎞) 구간을 전면 통제하고 인근 국도 17호선과 지방도 745호선으로 우회하도록 했다.
오주환 기자, 전주=김용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