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前법무 관료·검사 1100여명 “법치 훼손 바 장관 사퇴하라”

입력 2020-02-18 04:03
연합뉴스TV 제공

1100명이 넘는 미국 전직 검사들과 전직 법무부 관료들이 16일(현지시간) 성명을 발표해 윌리엄 바 법무장관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바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명령을 더 중시하면서 법치주의를 훼손시킨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고 CNN 등 미국 언론이 일제히 전했다.

전직 검사들과 법무부 관료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법무부의 사법적 결정은 정치로부터 독립돼야 한다는 바 장관의 뒤늦은 인정을 환영한다”면서도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명령을 따르는 바 장관의 행동은 불행하게도 그의 발언보다 더 컸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행동은 고결함이라는 법무부의 위상과 법치주의를 훼손시켰기 때문에 바 장관의 사임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후배인 현직 관료들에게 당부도 전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바 장관의 사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법무부 당국자들은 직무 선서를 수호하고 초당파적인 정의를 지키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직 법무부 관료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직격탄을 날렸다. 이들은 “대통령이 정적을 처벌하기 위해 또는 친구들을 돕기 위해 특정한 형사적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법무부에 대한 대통령의 공개적인 논평은 법무부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CNN방송은 바 장관 사임을 요구한 전직 검사와 관료들이 공화당 행정부와 민주당 행정부에서 모두 근무했던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특정 정파에 속한 관료들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번 논란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로저 스톤에 대해 미 검찰이 7∼9년을 구형한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1일 트위터에 “매우 끔찍하고 불공정하다”면서 “오심을 용인할 수 없다”는 글을 올린 데서 발단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선 참모’였던 스톤은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선거캠프와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공모·내통했다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 과정에서 위증과 조사 방해, 목격자 매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형에 개입하자 담당 검사 4명은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법무부는 “구형이 부당하고 과도하다”면서 스톤에 대한 구형량을 낮추기 위한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 언론들이 일제히 비판하자 법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글 이전에 결정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도망친 검사 4명은 누구인가. (러시아 스캔들 특별검사였던) 뮬러의 사람들?”이라고 비꼬는 트위터 글까지 올리며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논란이 확산되자 바 장관은 지난 13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일부 트위터 글로 인해 문제가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법무부의 사건들에 대해 트위터 글을 올리는 것을 이제 그만둬야 할 때”라고 요청했다.

비판론자들로부터 “트럼프의 법률적 공범”이라는 오명을 받는 바 장관으로선 이례적인 인터뷰였다. 바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한 이후 둘 사이의 관계가 멀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양해를 얻고 진행한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버니 샌더스·엘리자베스 워런·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 등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바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선 국면으로 이동하는 미 정국에서 바 장관 거취 문제가 돌발 쟁점으로 부상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