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목회는 하나님께서 여러 개의 관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5년 개척 때 일이다. 제주새예루살렘교회 개척의 문은 수월하게 열린 게 아니었다. 2002년과 2003년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를 둘러봤다. 2004년은 부교역자 시절 청년부와 전도여행을 하면서 제주를 찾았다. 청년 45명과 2004년 1월 제주 전도여행을 했다. 4개의 팀으로 나눠 미션을 주고 제주의 여러 곳에서 예배하고 전도했다. 그때 제주 감리교회 목회자들을 만나 제주 목회의 비전을 나눴다.
목회자들은 부정적 반응을 내비쳤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뿐 아니라 제주 전체 교회의 절반 이상이 미자립 상태입니다. 또다시 미자립 개척교회를 세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이런 반응이 나오자 두 가지 감사가 터져 나왔다. “주님, 제주의 교회와 영적 상황을 실제로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교사로 헌신했던 청년 시절 기도대로 선교지와 다를 바 없는 상황으로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전도 여행을 다녀온 후 하나님은 제주를 향해 더 기도할 마음을 주셨다. 개척과 목회의 문이 열리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부터 영적 도전들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2004년 가을 목사고시가 있었는데, 한 달 전부터 아내에게 혈변과 진통이 찾아왔다. 병원에선 대장의 자가면역 관련 질환인데 평생 안고 가야 할 난치병이라 했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대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난감했다. 교회 사역은 계속해야 하고 목사고시는 다가오고 어린 두 자녀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다. 첫째 아이는 할머니가, 둘째 아이는 교회 권사님께서 맡아 주셨다. 아내는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낮에는 교회 사역을 하고 저녁부터 아침까지는 아내의 병상 옆에서 돌보며 목사고시를 준비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모두가 잠든 밤에도 아내는 수십 차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혈변을 봤다. 아내의 진통이 잦아들면 병원 로비의 수납창구 불빛 아래서 공부했다. 졸지에 아이들도 아내도 나도 어떤 시험 앞에 서 있었다.
더 전심으로 하나님을 붙잡는 시간이었다. 목사고시를 보러 대전으로 내려가던 날 아내의 혈변이 멈췄다. 감사하게도 목사고시에 합격하고 돌아온 날 아내는 퇴원했다. 며칠 후 가족은 다시 모였다.
또 한 가지 도전은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교회 담임목사님이 갑작스럽게 임지를 옮긴 것이었다. 개척하면 힘이 돼주시겠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기대도 할 수 없게 됐다. 주님은 사람과 교회를 의지했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셨다.
제주 감리교회의 개척 불가 입장도 넘어야 할 관문이었다. 제주지역 교단 관계자는 새로운 미자립교회가 또다시 세워지는 것이 당시 제주선교 상황에 맞지 않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2005년 4월에 목사안수식이 예정돼 있었다. 교단법에 따라 그 전에 담임할 교회가 결정되지 않으면 안수 자체가 무산되는 상황이었다.
그해 1월 황급히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제주 지역 교단 관계자들을 만나 이러한 상황을 알리고 간청했지만, 답은 같았다. 그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목사님, 혹시 감리교 제주지방에 서류상으로는 있지만,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있습니까.” “아, 한 교회가 2년 전부터 목회자 미파송 상태에 있습니다. 전임 목회자가 경제적, 영적으로 타격을 받고 제주를 떠났습니다. 성도도 목회자도 교회 건물도 없는 서류상 교회죠. 한 달 후 지방회에서 영구 폐지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 교회를 맡으면 어떻겠습니까.” “정말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제주에 오고 싶습니까.” “네.” “좋습니다.”
하나님께선 새로운 방법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없어지는 것을 막으셨다. 그렇게 개척의 문이 열렸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도 나름대로 과정이 있고 도전이 있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신다. 실로 주님은 지혜가 한이 없으신 분이시다.
정리=백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