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본토 감염 59명·경로 불명확 잇따라… ‘유행’ 단계 진입했나

입력 2020-02-17 04:08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한 미국인 승선객이 16일 배에서 내리기 위해 짐을 싸고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전세기 2대를 동원해 크루즈선에 탑승 중인 420여명의 미국인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1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70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지난 3일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이후 지금까지 탑승자 3711명 중 감염자는 355명으로 늘어났고, 일본 전체 감염자 수는 414명으로 집계됐다. 게다가 경로도 파악되지 않은 국내 감염자가 속출하는 등 일본 방역 시스템이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면서 미국을 필두로 캐나다, 홍콩, 대만이 이 배에 탑승한 자국 국민들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했고 한국 정부도 철수를 추진하기로 했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후생노동상은 이날 NHK에 출연해 일본 내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이전까지와는 다른 상황이 됐다”며 “이젠 ‘감염 확대’를 전제로 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유행’ 단계에 진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일본 언론은 “정부가 코로나19 대책의 중점을 외국으로부터의 유입을 막는 ‘미즈기와’(水際)에서 국내 검사와 치료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일본어로 물가를 뜻하는 미즈기와는 병원균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 공항이나 항구에서 방역 대책을 펴는 것을 말한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탑승자들에 대해 ‘선상 격리’ 조치를 취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하지만 전국에서 59명의 감염자가 나오는 등 일본 내 지역사회 감염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3일 가나가와현에서 중국 방문 경험이 없는 80대 여성이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폐렴으로 숨지는 등 감염경로 파악이 어려운 확진 환자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후생노동성이 감염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사례는 모두 4건이라고 NHK는 전했다.

아베 정부의 서툰 대응에 대해 일본 내 여론도 악화되고 있다. 후생노동상을 지낸 마스조에 요이치 전 도쿄도지사는 전날 트위터에 “일본 정부의 대응은 너무 늦었다”면서 “크루즈선의 감염 확산은 국토교통성과 후생노동성 사이의 조정 실패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일본 정부는 크루즈선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대응을 놓고 갈팡질팡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 홍콩, 대만은 전세기를 보내 자국 탑승자들의 철수를 돕기로 결정했고 우리 정부도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탑승 국민을 대피시키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일본 당국의 조사에서 음성으로 확인된 우리 국민 중 귀국 희망자가 있다면 국내 이송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우리 국민 중 몇몇 분은 국내 이송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본 정부와 협의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인 탑승객이 14명에 불과해 대형 전세기 대신 ‘공군 2호기’나 공군 수송기 등이 이용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편 1455명을 태우고 2주간 바다를 떠돌다가 캄보디아에 입항했던 미국 크루즈선 웨스테르담호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남아 있는 승선자들의 하선이 잠정 금지됐다. 캄보디아 정부는 탑승자 전원에 대한 검사를 진행한 뒤 지난 14일 하선을 허가했으나 하선 후 말레이시아로 건너간 83세 미국 여성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이 배에서 함께 머물렀던 이들의 집단감염 우려가 제기된다.

장지영 최승욱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