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방시대] 전주영화촬영소 ‘기생충’ 계기로 글로벌 스튜디오 꿈꾼다

입력 2020-02-17 20:20
전주영화종합촬영소 J1 스튜디오 전경. 2008년 전주시가 지자체 최초로 세운 전주영화촬영소는 실내 스튜디오 2곳과 야외세트장을 갖췄다. 그동안 77편의 영화가 촬영됐다.

지난 10일 전북 전주시청 영화영상팀 직원들은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영화 ‘기생충’을 정말로 전주에서 찍었느냐” “그 세트장이 아직도 남아 있느냐”는 전화들이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며칠간 계속된 이같은 상황은 전주영화종합촬영소도 마찬가지였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 감독상과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 등 4개의 트로피를 휩쓴 뒤 전주와 전주영화종합촬영소가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전주시 상림동 전주영화종합촬영소. 2008년 조성된 이곳은 2020년 2월10일을 계기로 대한민국 영화 101년 역사와 미국 아카데미상 92년 역사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작품의 산실로 자리 잡았다. 기생충의 60% 정도가 전주영화종합촬영소에서 촬영됐다. 영화 속 박사장(이선균 분)네 저택이 촬영소 야외세트장에 지어져 전체 일정 77회차 중 46회차에 이르는 촬영이 이뤄졌다. 봉준호 감독은 2018년 4월부터 9월까지 5개월간 이 곳에서 집 내부와 야외 파티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오스카상 4관왕 쾌거를 이루자 축하 전화와 함께 이곳을 찾는 방문객도 늘어나고 있다. 정진욱 ㈔전주영상위원회 사무국장의 휴대폰엔 첫날 150여 통의 문자가 쏟아졌다.

전주영화촬영소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설립한 최초의 촬영소다. ㈔전주영상위원회가 위탁 운영을 하고 있다.

전국의 영화촬영소는 모두 8곳. 이 가운데 실내스튜디오(2곳)와 야외세트장을 겸비한 곳은 전주가 유일하다. 조창호 촬영지원팀장은 “로케이션 서비스와 장비 대여, 편집을 원스톱 서비스 하고 있다”며 “비오는 날을 연출할 수 있는 수압조절 장치 시설도 이곳에만 있다”고 말했다.

5만7000㎡의 부지에 들어선 전주영화촬영소에서는 ‘쌍화점’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모두 77편의 영화가 카메라에 담겼다. ‘전우치’ ‘부당거래’ ‘최종병기 활’ ‘은밀하게 위대하게’ ‘범죄도시’ 등을 비롯 지난 달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까지 많은 화제작이 이곳에서 잉태됐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90%가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주영화촬영소의 대여 일수는 2개 스튜디오와 야외세트장을 합쳐 한 해 500일 안팎이다. 지난해엔 768일이나 돼 이로 인해 2억여 원의 수익을 올렸다. 2018년 한 해 이 촬영소와 전북의 다른 촬영지 등을 찾은 영화사 관계자들이 쓴 직접 비용만 53억여원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전주영상위원회는 그동안 영상물 촬영유치·지원 사업을 바탕으로 영상 인재육성, 영상산업인프라 확충 등에 앞장서 왔다. 마을 영화제를 추진하고 시나리오스쿨도 운영했다.

전주영화종합촬영소 진입로에 설치돼 있는 안내판. 영화필름을 형상화한 모습이다.

전주영화촬영소는 이번 영광을 계기로 미국의 유니버설스튜디오 같은 ‘글로벌 스튜디오’를 꿈꾸고 있다. 지역 영상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고 전주를 명실상부한 ‘영화의 도시’로 도약시키겠다는 포부다. 물론 이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선 지자체는 물론 정부와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이 따라야 한다.

먼저 전주시는 촬영 뒤 철거됐던 ‘박사장 저택’을 복원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전북도와 의견을 같이 하고 제작사와 투자사와 접촉하고 있다. 최종 봉준호 감독의 양해를 구해 진행할 예정이다.

또 1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J3스튜디오 건립을 고려중에 있다. 더불어 올해 상반기 중 ‘전주영화학교’를 개교할 계획이다. 영화 한 편이 탄생하기까지 필요한 촬영 조명 음향 등 실무 커리큘럼을 통해 지역 영화 인재를 키워나갈 방침이다.

박흥식 전주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영화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넘사벽을 넘었다. 자랑스럽다. 대단한 일을 했다”며 “우리도 인력 양성에 충실해 제2의 봉준호, 제3의 봉준호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영화 찍을 기회는 전주에서, 영화 촬영 과정도 전주에서 해결하라”며 “전주시와 전주영상위원회가 최고의 파트너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 김승수 전주시장
“봉준호 감독이 대한민국과 전주에 큰 선물을 줬지요”


“봉준호 감독이 대한민국과 우리 전주에 큰 선물을 줬죠. 정말 고맙습니다.”

㈔전주영상위원회 위원장인 김승수 전주시장(사진)은 17일 “이번 쾌거를 시민들과 함께 축하드린다”며 “이번 영광을 발판 삼아 전주를 글로벌 문화도시로 키워가겠다”고 밝혔다.

김 시장은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상 4관왕은 대한민국의 문화 영토가 세계로 뻗어가는 계기가 됐다”며 “대한민국 영화 영상의 문화적 힘이 창조적 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세계 영화 국가로 우뚝 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2014년 전주시장에 당선돼 당연직 전주영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보수정권 아래에서도 현 최승호 MBC 사장이 뉴스타파 재직 시절 연출한 ‘자백’과 다큐멘터리 영화 중 최단기간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노무현입니다’의 제작을 도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천년도시 전주는 우리나라 대표 영화 영상도시입니다. 2000년 시작된 전주국제영화제는 ‘대안 독립영화의 중심 영화제’로 자리 잡았지요.”

김 시장은 부산과 부천, 베니스영화제 등을 직접 참관하기도 했다. 전주는 영화를 사랑하는 도시이자 문화적 힘이 축적된 도시라고 자부하고 있다. “전주영화촬영소는 무엇이든 영화인들이 상상하는 것들이 실현되는 공간입니다. 이 곳으로 오십시오.”

김 시장은 “전주영상위와 영화촬영소를 통해 ‘제작’이 성장하고,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작품들’이 성장하고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역량과 지원을 집중해 국제경쟁력을 갖춘 영상산업도시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전주=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