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헌적이나 죄 안된다’는 법원의 해괴한 무죄 논리

입력 2020-02-17 04:03
사법농단 피고인에 대한 법원의 무죄 선고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는 지난 14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건에 이은 세 번째 무죄 선고다. 임 판사는 2014~2016년 형사수석부장판사 재직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청와대 의중을 전달받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해 청와대 입장이 반영되도록 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임 판사의 재판 개입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 행위이나 죄는 물을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법리상 문제 행위가 공무원의 직무권한에 해당해야 처벌이 가능한데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는 재판에 관여할 수 있는 직무권한 자체가 없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임 판사 방어 논리를 법원이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백 번을 양보해도 반헌법적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이번 재판은 앞서 무죄가 선고된 두 재판과 성격이 다르다. 앞선 두 재판이 재판 진행 상황이나 수사 진행 상황 등의 정보를 유출한 혐의에 대한 재판이라면 이 건은 재판에 직접 개입한 사건에 대한 재판이다. 1심 판결대로라면 사법행정권자의 재판 개입 혐의를 형사처벌할 길이 없다.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장 역시 재판에 관여할 직무권한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사법부가 재판을 거래한 사법농단 사건은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뿌리부터 뒤흔든 것으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현대사의 치욕이다. 피고인이 현직 판사가 아니었어도 법원이 같은 무죄를 선고했을지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