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가 특정 보수단체를 불법 지원했다는 ‘화이트리스트’ 사건 관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대법원은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선 유죄로 인정했지만 강요죄 부분은 무죄 취지로 다시 판결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1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죄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 8명의 상고심에서 강요죄 부분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 등은 2014부터 2016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압박해 33개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에 69억원을 지원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김 전 실장에 대해 징역 1년6개월, 조 전 수석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직권남용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1심과 달리 2심은 직권남용죄와 강요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김 전 실장 등의 행위가 강요죄 구성 요건인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공무원이 그 지위에 기초해 이익 제공을 요구했다고 해서 곧바로 협박으로 볼 수 없다는 지난해 8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윗선을 언급하거나 자금 집행을 독촉하고, 정기적으로 자금지원 현황을 확인하는 등의 사정만으로 협박을 뜻하는 ‘해악의 고지’가 있었다고 평가하기에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또 “전경련 관계자들의 진술은 대통령비서실의 요구가 지원 대상 단체와 금액을 특정한 구체적인 요구라서 부담감과 압박감을 느꼈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주요 쟁점이었던 직권남용죄에 대해선 대법원도 유죄로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전경련에 특정 정치성향의 시민단체 자금 지원을 요구한 행위는 대통령비서실장과 정무수석비서관실의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며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김 전 실장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직권남용죄 구성 요건을 보다 엄격하게 제시했다. 이 때문에 ‘화이트 리스트’ 사건도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는 법조계 관측이 나왔었다.
당시 대법원은 특정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를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지만 ‘명단을 송부하는 행위’ 등이 직권남용죄 요건인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는지 다시 따져보라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