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피해자 함께 경기출전… 비리근절커녕 2차가해 방조한 체육계

입력 2020-02-14 04:03

성폭력과 승부조작 등으로 홍역을 치렀던 체육계가 여전히 각종 비리와 비위를 근절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13일 공개한 ‘국가대표 및 선수촌 등 운영·관리실태’ 보고서에는 체육계의 솜방망이 징계와 어설픈 관리로 인한 2차 피해 발생 등 총체적 부실이 그대로 적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장애인체육회는 2017년 6월 장애인 조정 국가대표 A코치에 대한 언어폭력·강제추행 신고 사건을 조사하면서 피해자 3명과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하고서도 가해자가 부인한다는 이유로 사건을 직접 처리하지 않고 장애인조정연맹이 추가 조사 후 처리하도록 했다.

하지만 장애인조정연맹은 추가 조사 없이 언어폭력 혐의만 인정해 A코치에게 자격정지 6개월 처분을 내렸다. 장애인체육회는 자격정지 1년 이상일 때만 활동을 제한하고 있어 A코치와 피해자가 같은 팀으로 경기에 출전하고 이 기간 내내 피해자가 코치를 피해 다닌 일도 발생했다. 결국 피해자들이 A코치를 직접 고소했고, 2018년 9월 강제추행 혐의가 인정돼 A코치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체육지도자의 비위 사실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아 한 단체에서 제명당한 인사가 다른 단체에서 계속 활동하는 일도 벌어졌다. 2016년 12월 폭력 사유로 장애인수영연맹에서 제명당한 B씨는 2년도 지나지 않은 2018년 5월 대한수영연맹에 코치로 등록해 활동했다. 대한축구협회는 2017년 8월 폭력을 행사해 자격정지 1년6개월에 지도자 등록 영구제한 처분을 받은 C씨를 지난해 1월 한 초등학교 축구감독으로 등록해줬다.

성폭력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체육지도자 가운데 자격증 취소나 정지 처분이 필요한 지도자는 97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천국가대표선수촌의 출입 관리도 허술했다. 감사 기간 동안 191명이 보안카드를 대지 않고 선수촌을 드나들었다. 선수촌 내 보안카드 무인발급기는 간단한 개인정보만 입력하면 누구라도 발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어서 지난해 2월 이를 악용한 남자 쇼트트랙 김건우 선수가 여자 숙소에 무단 출입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