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재앙’ 키운 日… 잔치 앞두고 덮기 급급

입력 2020-02-12 18:38 수정 2020-02-12 23:05
일본 자위대가 10일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승선자 가운데 신종코로나 감염자 이송 준비를 하는 것을 승객들이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집단 발생한 일본 정박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확진자 39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승선자들의 상태를 검사했던 검역관도 감염됐다. 일본 정부가 이미지 추락 우려에 전전긍긍하면서 적극적인 사태 해결을 회피하다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후생노동상(후생상)은 12일 “추가 검사에서 승선자 39명이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로써 크루즈선 확진자는 승객과 승무원을 합쳐 총 174명이 됐다. 이 가운데 4명은 위중한 상태다. 일본 본토 확진자 수를 더하면 총 203명으로 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검역관 1명도 이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검역관은 지난 3일 요코하마항에 도착한 배에 들어갔다. 마스크와 장갑은 착용했으나 보호복은 입지 않은 상태였다.

올여름 올림픽이라는 대형 행사를 앞두고 국제사회 위상 관리에만 신경쓰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일본 정부가 사태 악화를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중국에서 자국으로 감염이 확대되고 있다는 이미지가 국제사회로 번져 올림픽 개최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한 외무성 간부는 마이니치신문에 “일본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가 국제사회에 퍼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본 정부는 ‘병원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해상에서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사태 해결에 나서기보다 그저 크루즈선 감염자를 본토 감염자 수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데 매달리고 있는 모양새다. 이날도 일본 정부는 승선자들은 제외하고 검역관만 자국 감염자 수에 포함시켰다.

지난달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하선한 홍콩 국적 80대 남성이 코로나19 감염자라는 사실이 지난 2일 알려진 뒤 일본 정부의 대처는 갈팡질팡의 연속이었다. 폐쇄된 선박의 특성상 집단감염 우려가 제기됐지만 일본 정부는 하선 조치 없이 탑승객들을 배에 머물게 했다. 하선한 탑승객 가운데 감염자가 나와 본토 감염자 수가 늘어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격리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첫 집단감염이 확인된 5일까지 식당과 극장 등 공용 공간 출입이 통제되지 않았다. 바이러스 확산을 방치한 셈이다.

첫 집단감염 발생 후 왜 즉각 전수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전수 조사를 통해 감염자들을 분리한 뒤 추가 감염을 막았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가토 후생상은 지난 10일 뒤늦게 전수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같은 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검사 능력의 한계를 거론하며 전원 검사가 어렵다고 밝혀 엇박자만 노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위기관리 전문가들을 인용해 “일본 정부는 공중보건 위기에 대처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교과서적인 예를 제시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