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 전 이스라엘 백성은 양을 먹고 이마에 표를 받았다. 만약 그들이 문설주와 인방에 피가 있는 집에서 생명을 얻었다고 해도 홍해수를 건너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가나안은커녕 평생 애굽에서 종살이 했을 것이다.
홍해수 사건은 영적으로 목회현장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영혼을 전도해 교회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배와 봉사 헌금 선교 제자훈련을 통해 양육한다. 그렇게 전도된 이들을 보며 고민했던 것이 있다. ‘혹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구원받은 걸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신앙훈련의 목적은 무엇이고 왜 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출애굽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생명을 얻기 위해 문설주와 인방에 피가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할례를 받고 불에 구운 양을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고 이마에 표를 받았다. 홍해수를 건너기 위한 준비단계였던 것이다.
성도가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오면 처음엔 구원의 기쁨과 은혜가 넘친다. 보통 그런 기쁨은 3~4년 가면서 타성에 젖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두 번째 단계의 신앙으로 진입해야 한다. 그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사건이고 세상을 끊는 홍해수 사건이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홍해수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2) 또한 바울은 세례가 무엇인지 로마서에서 선명하게 말해준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롬 6:3)
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구원받은 사람이 물로 세례를 받을 때 중요한 점은 세 가지로 얘기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그리고 미래의 죄를 모두 씻어주셨음을 믿고 세례받는다.
둘째,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해서 세례를 받았으면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부활할 것을 믿고 세례를 받는다.(롬 6:5) 이때 세례는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이다. 그래서 홍해수에서 세례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오직 만나로만 살아갔듯이 우리가 세례받는 것은 이제부터 오직 예수로만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홍해수를 지나 애굽을 떠났으면서도 애굽에서 먹었던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 등 음식을 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민 11:5) 어떤 사람들이 광야에 나와서도 애굽의 음식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성경은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이마에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출애굽기에서는 이 사람들을 ‘잡족’이라고 표현했고 민수기에서는 이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나올 때 ‘섞여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잡족들은 광야에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백성을 선동했다. 그리고 애굽의 음식을 먹고 싶다고 유대인들을 선동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선동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들이 성도 중에 섞여 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섞여 있는 자’들이 있는지 분별하는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한다.(민 11:4) 섞여 있는 자는 ‘할례받지 않은 자’다. 할례란 무엇일까. 세상 가치를 버리는 것이요,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다.(골 2:11)
셋째, 홍해수까지 좇아왔던 바로가 홍해수에서 죽었듯이 우리를 쫓아다니던 사단은 우리가 믿음으로 세례받고 성령을 받을 때 떠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애굽을 떠나 홍해수를 건널 것인지 아니면 애굽에 머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물로 세례를 받은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3:5)
경험상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 성인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삶이 변화되는 것을 보았다. 이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후 말씀을 훈련하면 그 속도가 두 배 세배가 아니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된다.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생명력이 넘치고 신앙생활에 활기가 가득해진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에서 성령체험을 하고 그 기쁨과 감격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홍해수 앞에서 두려움으로 떨었던 이스라엘 백성도 출애굽기를 보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후 기쁨으로 찬양했다.(출 15:2)
복음은 목에 걸고 다니는 액세서리가 아니다. 복음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다. 복음 안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권세가 나타난다. 그 권세는 예수 믿은 사람들이 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의 불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