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 리원량 살아 있다면 지금도 맹활약? 가택연금?

입력 2020-02-15 04:02 수정 2020-02-17 17:25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험을 처음 경고했던 중국 의사 리원량이 사망한 지난 7일 중국 우한중심병원에 마련된 임시 추모소에 그의 얼굴 그림과 국화가 놓여 있다. 그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알렸으나 당국에 소환돼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이후 자신도 감염돼 투병하다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처음 경고했던 중국 우한의 의사 리원량이 숨졌다.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다 자신도 감염됐고, 지난 7일 3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유사한 증세의 환자 보고서를 본 뒤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알렸지만 당국으로부터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말이 사실임이 드러나면서 영웅으로 거듭났다.

‘코로나19 영웅’ 리원량이 완치돼 살아남았다면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중국은 그를 어떻게 기록했을까. 현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는 없고, 17년 전 그와 비슷하게 ‘사스 영웅’으로 치켜세워졌던 이들의 삶을 통해 유추해볼 뿐이다.

두 사스 영웅의 다른 길

2003년 중국에는 영웅 2명이 등장했다. 장옌융과 중난산, 둘 다 의사였다. 장옌융은 중국의 사스 실태를 세계에 폭로한 인물이다. 중난산은 사스 치료의 최전선에서 환자들을 돌봤다.

사스 사태가 마무리된 후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장옌융의 삶은 구금과 가택연금의 연속이었다. 중난산은 현재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고위급 전문가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두 사람의 흥망성쇠는 전염병 같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중국 지도자들이 엄격히 통제하려 애쓴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장옌융(사진)은 중국 최고 의료기관인 인민해방군 301병원 외과 의사였다. 그는 2003년 중국 정부가 사스 확산 실태를 축소·은폐하자 이를 폭로했다. 당시 위생부장은 “3월 31일 현재 베이징의 사망자는 3명, 감염자는 12명”이라고 발표했지만 베이징 군병원에서만 사망자 6명, 감염자가 60명이었다. 분노한 장옌융은 이 사실을 국영 CCTV에 알렸지만 보도되지 않자 서방 언론에 전했다. 더 이상 실태를 은폐할 수 없게 된 중국 당국이 뒤늦게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게 한 계기였다.

장옌융은 ‘중국의 양심’으로 칭송받았지만 잠시뿐이었다. 중국 당국은 그해 5월 장옌융과 외국 기자의 접촉을 금지했다. 사스 이후에도 그는 자유롭지 못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군병원에서 총에 맞은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현실을 목도한 장옌융은 2004년 15주년을 맞아 이를 ‘반혁명 폭동’이 아닌 ‘애국운동’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서한을 공산당 지도부에 보냈다. 중국 당국은 장옌융과 부인을 구금시켰고 독방에서 세뇌교육을 하기도 했다. 가택연금에서 풀려나서도 인터뷰 금지 등 제한이 있었다.

장옌융은 사스 실태를 세상에 알린 공로로 2004년 ‘아시아의 노벨상’인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출국을 막으면서 딸이 대리 수상해야 했다.

중국 정부에 중난산은 장옌융보다 훨씬 용이한 인물이었다. 중난산 연구팀은 2003년 4월 사스 바이러스를 분리해 식별했고, 이는 환자 치료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다. 중국 언론은 중난산을 ‘흰 가운 입은 투사’로 묘사하며 칭송했다. 이후 중난산은 중국 공공보건 분야 권위자가 됐다.


중난산(사진)은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당국의 대처도 호평했다. 그는 신화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전염병 통제 영역에서 크게 발전했다”며 정부의 조치들을 평가했다. 2주 안에 코로나19 사태가 절정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FT는 “의학 전문가에게서 나올 수 있는 가장 낙관적인 전망”이라며 “대부분의 다른 예측들은 4~5월에 감염이 절정에 이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라진 사스 내부고발자

장옌융은 현재도 중국 내에서 가택연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가디언은 장옌융이 지난해 4월 천안문 사태 30주년 때에도 천안문 사태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서한을 공산당 지도부에 보냈다고 지난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장옌융의 아내 화중웨이는 가디언에 “남편은 가택연금 중”이라며 “외부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FT는 장옌융의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그가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장옌융의 이름은 중국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FT는 “국영 언론의 웹사이트에서 장옌융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환경운동, 소셜미디어, 체포’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부루너도 “중국은 온라인 기록을 삭제하는 데 적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장옌융의 딸 장루이는 2004년 막사이사이상 대리 수상 당시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일은 꼭 있어야만 한다”며 “이 상은 더 많은 중국인들이 진실을 말하도록 격려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리원량은 약 16년 뒤 진실을 알렸고, 본인의 감염 후에도 “내가 감염됐는데 왜 당국은 의료진 감염 사례가 없다고 하는지 의아하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중국은 리원량과 관련해 당국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속속 삭제하며 여론 통제에 나서는 모습이다. 리원량이 완치됐다 해도 장옌융의 사례에서 보듯 순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