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크 쿠퍼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11일 싱가포르 국제 에어쇼를 앞두고 “중국은 에어쇼를 미국의 기술을 훔치는 기회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엄중 경고했다. 같은 날 미 법무부는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해커 4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무역합의로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던 미·중 갈등이 정보전쟁 형태로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 사태로 위기에 몰린 중국 정부에 위로 메시지를 내놨다.
쿠퍼 차관보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로 고초를 겪고 있다”면서도 “그들은 싱가포르 에어쇼를 미군의 기술 기밀을 훔치거나 미국의 동맹국들에 자국 무기를 강매하는 자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기술 정보를 빼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동맹국들에 질 낮은 군수장비를 덤핑 판매해 동맹안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중국이 에어쇼를 착취와 절도를 위한 플랫폼 정도로 활용하는 일을 보고 싶지 않다”고 재차 강조했다.
중국은 이날부터 16일까지 개최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싱가포르 에어쇼에 사상 처음으로 인민해방군 공군을 보내 곡예비행을 선보인다. 신종 코로나 확산 우려로 참가 신청을 철회한 업체가 7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국 역시 예정대로 에어쇼에 참가한다는 입장이다. 쿠퍼 차관보는 “중국에 대응해 역대 최대 규모의 대표단을 에어쇼에 참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두 초강대국이 에어쇼를 공군력 과시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싱가포르 주재 미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한 전직 관료는 이와 관련해 SCMP에 “중국 정부는 에어쇼를 정보 수집을 하기 위한 최고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에어쇼가 미·중 양국의 정보전쟁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미 법무부도 중국군 해커들에 대한 기소 사실을 알리며 양국 정보전쟁에 불을 붙였다. 이번 기소는 중국의 스파이 활동 단속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최근 기조 연장선에 놓인 조치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지용과 왕첸, 쉬커, 류레이 등 인민해방군 산하 54연구소 소속 해커 4명을 해킹 및 기밀정보 절도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17년 5월부터 7월까지 미 최대 신용평가업체 에퀴팩스를 해킹해 약 1억5000만명의 개인정보를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 전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름과 생일, 주소는 물론이고 사회보장번호(SSN), 운전면허번호까지 포함됐다. 바 장관은 “미국인의 사적 정보를 고의로, 광범위하게 침탈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주지사들을 상대로 한 백악관 연설에서 “신종 코로나는 4월쯤 사라질 것”이라며 “일반적으로 말해 열기가 이런 종류의 바이러스를 죽인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트럼프가 중국에 유화적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그는 지난 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 사실을 공개하며 “(신종 코로나 관련) 시 주석과 훌륭한 대화를 나눴다. 힘든 상황이다. 나는 그들이 매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