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군 만항재 운탄고도,눈썰매 트레킹 떠나보세요

입력 2020-02-12 21:07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만항재에서 꽃꺾이재로 이어지는 운탄고도에서 하얀 상고대를 입은 나무 사이로 눈썰매를 끌고 가는 트레커들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눈 쌓인 길을 걷다가 내리막이 나타나면 썰매를 타는 눈썰매 트레킹이 인기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만항재(1330m)에서 출발하는 운탄고도(運炭古道) 썰매 트레킹이 대표적이다. 운탄고도란 고한읍의 백운산(1426.6m)과 두위봉(1470.8m) 7~8부 능선 해발 1000m 안팎을 따라 이어진 임도로, 중국의 차마고도에 빗댄 이름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석탄을 캐서 운반하던 트럭이 다니던 길이었다. 1980년대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로 폐광이 잇따르면서 석탄차가 다니던 길은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1998년 강원랜드가 백운산을 중심으로 ‘하이원 하늘길’을 조성하면서 정선을 대표하는 걷기길로 다시 태어났다.

운탄고도는 사시사철 어느 때 걸어도 좋다. 겨울 운탄고도의 가장 큰 즐거움은 내리막에서 썰매 타기다. 만항재에서 시작해 백운산과 두위봉을 거쳐 새비재(850m)로 연결되는 40㎞코스는 1박2일을 걸어야 하는 긴 코스다. 이에 대부분 화절령을 거쳐 강원랜드호텔 폭포주차장으로 내려오는 17㎞ 코스를 택한다. 더 짧게는 백운산 부근의 하이원리조트나 하이원CC에서 마칠 수 있다. 하이원리조트 곤돌라를 타고 백운산 정상에 오른 뒤 새비재나 만항재로 갈 수도 있다. 간간이 오르막이 있지만 가파르지 않아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썰매를 타고 내려가는 등산객.

우리나라에서 차를 이용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는 새벽부터 등산객으로 붐빈다. 단순한 등산객도 있지만 눈썰매 트레킹을 즐기러 찾는 이들이 상당수다. 초입부는 고속도로처럼 뻗어 있는 평평한 눈길이다. 마치 극지탐험가처럼 썰매에 배낭을 올려서 끌고 간다. 썰매의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얼마 가지 않아 내리막이다. 배낭 위에 몸을 올린다. 속도감에 처음엔 좀 당황하지만 익숙해지면 스릴을 온몸으로 즐기게 된다. 경사가 다소 완만하면 등산 스틱을 이용해 힘껏 밀어준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며’ 추위를 저만치 물리친다.

약 8㎞ 지점에서 하이원CC로 하산할 수 있다. 임도를 따라 가던 길을 조금 더 진행해 백운산 주변에 이르면 나무마다 하얀 서리꽃이 장관이다. 시리도록 맑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낙엽송에 달라붙은 상고대가 환상적인 풍경을 내놓는다. 말 그대로 설국(雪國)이다. 산 아래쪽으로는 시야가 확 트여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광부 동상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1177갱.

다음은 손 흔들며 웃고 있는 광부 동상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1177갱(坑)’이다. 1960년대 무연탄을 채굴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해발 1177m에 개발한 최초의 갱도다. 여기서 캐낸 석탄을 트럭에 실어 운탄고도를 따라 동쪽 함백역으로 보냈다. 강원랜드가 2015년 12월 ‘1177갱’ 원형을 일부 복원했다. 갱 입구에서 바라본 풍광이 명품이다. 숨 막히는 막장에서 나온 광부들이 장쾌하게 뻗은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1177갱을 지나면 곧바로 산골 아낙들이 진달래 등 야생화를 꺾으며 넘었다는 ‘꽃꺾이재’(화절령)다. 인근 낙엽송 숲 가운데에 형성된 작은 연못 ‘도롱이못’ 설경도 빼어나다. 지름 50여m 연못은 1970년대 탄광 갱도가 내려앉아 생겼다고 전해진다. 광부 가족들은 연못에 올라 도롱뇽의 생사를 확인했다고 한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도롱뇽을 보면서 가장이 무사할 것이라 믿었다. 낙엽송 아래 텐트를 칠 수 있는 너른 평지도 있어 ‘백패커들의 성지’라 불릴 만큼 적설기 야영지로 손꼽힌다. 눈 덮인 세상에서 더없이 적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도롱이못 인근 백패커들의 텐트.

만항재 아래에 만항야생화마을이 있다. 광산이 활발하던 때 탄광1번지로 불리며 주민 수가 1000명이 넘을 정도로 북적이는 곳이었으나 광산이 점차 문을 닫고 마지막으로 2001년 정암광업소까지 폐광하자 주민들은 하나둘 짐을 싸서 떠났다. 만항마을 아래 2001년 폐광된 삼척탄좌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삼탄아트마인이 있다. TV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정선=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