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F 방역에 잔반 처리 못해 ‘음식물 쓰레기 대란’ 우려

입력 2020-02-11 04:05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한 음식물쓰레기 자원화업체의 건물 내부에 음식물쓰레기가 쌓여 있다. 한국음식물자원협회 제공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 조치의 후폭풍이 음식물쓰레기에 불어닥쳤다. 사육돼지에게 잔반 급여를 금지하면서 처리하지 못한 음식물쓰레기가 쌓이고 있다. 수도권에서만 미처리 물량이 2만여t(1월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동물 사료로 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관련 업계의 사정이 불러온 부작용이기도 하다.

야생 멧돼지에서 ASF 발병이 계속 확인되고 있어 잔반 급여를 재개할 수는 없다. 업계도 정부 결정에 공감한다. 다만 음식물쓰레기가 쌓이면서 수거 자체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불거지는 걸 막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실마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는 하루 평균 1만5680t 안팎이다. 이 가운데 1만3465t은 비료·퇴비나 에너지, 사료 등으로 재활용되고 나머지를 소각·매립한다. 이 통계는 ASF 발생 이후 시점으로 보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난해 9월 17일부터 재처리한 음식물쓰레기를 사육돼지 농장에 공급할 수 없다. 환경부는 이런 조치로 전국에서 하루 평균 1200t 정도의 음식물쓰레기가 처리되지 않은 채 쌓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배출량이 많은 수도권에선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하루 평균 5500t의 음식물쓰레기가 나온다. 비료·퇴비 등으로 활용하던 물량에는 문제가 없지만, 사료용은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국 146개 사육돼지 농장으로의 사료 공급이 막혀서다. 업계에서는 지난달 말까지 4개월간 쌓인 음식물쓰레기가 2만여t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사육돼지에 잔반을 다시 주는 건 현재 상황에서 불가능하다. 잔반 급여는 사람, 차량, 야생 멧돼지와 함께 ASF의 주요 감염 경로로 꼽힌다. ASF 바이러스가 들어 있는 중국산 순대 등의 음식물쓰레기를 재처리해 사료로 쓰면 감염 확률이 높아진다. 야생 멧돼지에서 ASF 감염 사례가 여전하다는 것도 문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9일 기준 173건의 야생 멧돼지 발병 사례가 보고됐다. ASF는 경기 연천군(50건)과 파주시(50건), 강원 화천(53건)·철원(20건)군에서 맹위를 떨친다.

업계도 이런 점에 공감한다. 대신 쌓여만 가는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할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석길 한국음식물자원협회 사무국장은 “음식물쓰레기 대체 처리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일단 단기적으로 수도권 내 가축분뇨처리시설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예방적 살처분 이후 사육돼지로부터 나오는 가축분뇨가 없기 때문에 용도 전환이 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음식물쓰레기 제도 자체를 뜯어고칠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연내 입법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