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영화가 마침내 오스카를 정복했다.”
뉴욕타임스(NYT)는 9일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에 대해 “오스카 소 화이트(#OscarsSoWhite) 운동 이후 이뤄진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의 투표권 다변화가 이룬 역사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오스카는 백인 중심(#OscarSoWhite)’이라는 해시태그는 지나치게 백인 중심적인 오스카를 비판하기 위한 캠페인의 상징이다.
한국에서 아카데미상으로 알려진 오스카는 제작자와 감독, 배우, 스태프 등 영화인들로 구성된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미국 최대 영화상이다. 아카데미상이 보수적 이데올로기와 보편적인 주제, 전통적인 방식의 드라마를 선호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작품상은 ‘가장 뛰어난 영화보다 미국적인 영화를 선호한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다. 이런 아카데미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2015~2016년 2년 연속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이 ‘백인 잔치’ 논란에 휘말리면서부터다. 2년 연속 남녀 주·조연상 부문 20명이 전부 백인 배우들로 채워지자 유색인종 영화인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스카를 비판하는 해시태그가 SNS를 점령하고, 스파이크 리 감독 등 일부 영화인들이 아카데미 보이콧에 나설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아카데미는 회원 가운데 여성과 소수계 비율을 2020년까지 2배 이상 늘리고 회원 투표권도 10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발표했다.
아카데미 측은 전체 회원 명단을 비밀에 부치고 있지만 2012년 LA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백인의 비율은 94%에 달했다. 남성 회원이 77%, 평균 연령은 62세였다. 60대 이상 백인 남성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배한 것이다. LA타임스가 2016년 다시 조사했을 때도 회원 중 백인이 91%였고 흑인은 3%, 아시아인과 히스패닉은 각각 2%였다. 남성 회원은 76%였다.
기생충은 자본주의 계급 문제를 다룬 외국 스릴러 영화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아카데미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 작품상은 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LA타임스가 아카데미의 변화를 위해서라도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기생충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투표한 회원들은 다양성에 대해 의식적인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비영어권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은 것은 세계의 승리”라면서 “기생충의 수상은 오랜 세월 외국 영화를 낮게 평가해온 미국 영화상에 분수령이 됐다”고 지적했다.
NYT는 기생충의 수상에 대해 24개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렸던 넷플릭스 영화를 꺾은 데에도 의미를 뒀다. 다른 상당수 후보들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기반 영화였던 데 반해 기생충은 전통적인 극장 개봉 형식 영화였다는 것이다. NYT는 “기생충은 (내용 면에서)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미래를 껴안게 만드는 동시에 (형식 면에서) 수십년간 반복된 전통을 지킬 수 있게 했다”고 평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