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상훈 윤정희 부부 (8) 공부 거부했던 요한이… 이젠 성적 우수 장학금 받아

입력 2020-02-12 00:05
세 딸을 빼고 여덟 아들이 우리 부부와 함께했다. 식구가 많아 가족 전체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다.

우리 집 장남은 넷째 요한(17)이다. 사랑(16)이가 점점 가족으로 적응하며 걷기 연습을 이어갈 즈음이던 2008년 아내가 늘사랑아동센터 소장님께 전화했다. 사정으로 당분간 입양이 어렵다던 아이가 혹시 다른 가정으로 갔는지 물었다.

“아직 입양되지 않았어요. 친부모가 베트남에서 근로자로 오신 분들인데 병원에 아이를 낳고 사라졌어요. 아시다시피 아토피도 심하고, 퇴행성 발달장애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아 치료도 받고 있어요. 성격도 까칠하고 예민해서 다른 가정에 갔다가 다시 센터로 왔어요.”

아내는 전화로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럼 우리 집으로 보내주세요”라고 말했다. 벌써 3녀 2남, “그 많은 아이 다 감당할 수 있겠어요”라는 소장님 말에 아내는 “그럼요. 할 수 있어요. 하은이 하선이도 잘 도와주고, 하은빠(하은 아빠)가 워낙 아이들에게 헌신적이라 전 힘든 줄도 몰라요”라고 답했다. 요한이는 그렇게 우리 품에 안겼다.

처음부터 참 힘들었다. 자녀 키우는 게 쉽다는 말씀을 하는 분들이 부러울 정도로 요한이는 정말 힘든 아이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 한글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글자를 가르쳐 주려 했지만, 요한이는 우리 부부의 기대를 저버리고 공부하는 걸 거부했다. 책상 아래 들어가면 종일 나오지 않는 요한이를 보며 아내는 요한이를 따라 책상 아래로 내려갔다. 책상 아래에서 함께 책을 읽고 간식을 먹었다.

요한이는 생각보다 아토피가 심했다. 아내는 치료를 위해 요한이가 먹는 밥은 황토물을 받아 따로 짓고, 가족 모두가 라면이나 과자류를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동생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던 하은이마저 “과자와 음료수도 안 되면 도대체 뭘 먹냐”고 호소했다. 그런데도 동생 요한이를 위해 모두 인스턴트 간식을 끊었다. 플라스틱이 좋지 않다고 해서 요한이가 먹는 그릇은 사기그릇으로 교체했고 옷도 몸에 좋은 순면만 입혔다.

6개월 정도 지나니 요한이가 조금씩 우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가끔 눈도 마주치고 웃기도 했다. 요한이가 웃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함께 웃었다. 우리 아이들 중에 요한이가 마음을 여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주님은 역시 반전을 예비하셨다.

한글도 모른 채 초등학교에 입학한 요한이는 나와 함께 홈스쿨을 하며 수학과 과학에 두드러진 재능을 보이는 아이로 거듭났다. 이제 고등학생인데 지난해에는 학교에서 성적 우수 장학금도 받았다. 큰 누나 하은이는 동생을 이렇게 표현한다.

“잘 생긴 만큼 성격도 까칠한 ‘꽃미남’. 아토피 때문에 많이 울고 한글도 몰라 책도 읽지 못하던 내 동생 요한이가 나의 유학 시절 동안 대대적 변신을 했다. 글도 잘 읽고 공부도 잘해 지금은 수재가 됐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일어났다. 뭐, 우리 집에서는 일상이라 다들 놀라지도 않는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