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여느 해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펑펑 흩날리던 흰 눈 대신 뿌연 미세먼지만 가득했고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따뜻했다는 1월의 풍경은 초봄과도 같았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도 가세했다. 한 금융기관에서 경제강의를 했는데, 청중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기침조차 삼키고 있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괴스러웠다. 신종 코로나와 기후변화는 주변의 모습뿐만 아니라 경제의 흐름도 바꾸고 있다. 이번에는 과거 사스와 메르스의 부작용이 경제로 파급된 경로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는 중국에서 2003년의 사스보다 빠르게 확산되면서 소비, 생산 등 경제활동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다. 지금 중국은 세계 경제성장의 3분의 1을 담당하며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3년보다 4배나 커진 16%에 달한다. 중국 경제의 둔화가 국내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사스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일상생활에서의 전염 가능성으로 메르스 사태 당시처럼 소비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여행, 음식, 숙박업, 도소매업 등이 큰 타격을 받는 가운데 중국산 부품 공급의 애로로 제조업 생산도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금번 신종 코로나는 우리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는 시점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기후변화는 중장기적 위험 요인이다. 이미 국제결제은행(BIS)은 기후변화가 예기치 못한 시점에 자연재해를 발생시켜 물가 급등이나 노동생산성 급락 등 경제에 거대한 충격을 주고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 충격은 기존의 통계를 활용해 분석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금융위기 위험을 녹색 백조로 명명했다. 검은 백조(가능성은 낮지만 발생 시 엄청난 충격을 주는 위험)에 이어 녹색 백조까지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경제는 예상하지도 못했고 예측도 불가능한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에 바이러스가 세계 공급망을 무너뜨리고 공장 가동을 중지시킬 것이라고 누가 쉽게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앞으로 언제 어떤 색깔의 백조들이 나타나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줄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일이다.
예측 불가능한 경로로 다가오는 다양한 위험들을 교과서적인 경제정책만으로 대응하기는 벅차 보인다. 새롭고 유용한 정책수단들이 필요하다. 금융위기 때만 하더라도 비정상적인 통화정책으로 취급받았던 양적완화정책은 이미 통화정책의 유효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유럽중앙은행은 재생에너지 등 기후변화 대응 사업과 관련된 채권을 대상으로 하는 녹색 양적완화도 주창하고 있다. 우리도 통화정책 체계를 정비해 필요 시 언제라도 활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들을 마련해놓아야 한다. 길게는 통화정책의 목표가 물가 안정에서 한 걸음 더 나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재정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 사설은 구조 개혁과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건전성에만 얽매이지 말고 지금처럼 금리가 낮을 때 국채를 발행해 공공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역 시스템 구축, 친환경 에너지와 교통수단 확충 등 공공 투자가 필요한 분야는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있다. 당장 재정에 부담이 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성장 기반을 강화시켜 재정 부담을 덜어줄 것이다. 예측조차 불가능한 위험요인들로 둘러싸인 시대다. 이를 헤쳐나가려면 경제정책도 기존의 틀과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