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부터 딛고 일어선 노장 박희영(33)이 7년 만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박희영은 9일 호주 빅토리아주 바원헤즈의 서틴스 비치 골프 링크스 비치 코스(파72·6305야드)에서 열린 LPGA 투어 ISPS 한다 빅 오픈(총상금 110만 달러) 최종 라운드에서 1오버파 73타를 쳐 8언더파를 기록한 뒤 유소연 최혜진과 연장 승부를 가졌다. 박희영은 4차 연장전의 혈투 끝에 최혜진을 꺾고 개인 통산 세 번째 LPGA 우승을 차지했다. 박희영은 올 시즌 첫 LPGA 투어 한국 선수 우승자다.
이날은 날씨가 큰 변수로 등장했다. 대회가 열린 바원헤즈에는 시속 29마일(약 47㎞)에 달하는 바람이 불었다. 깃대가 내내 흔들리는 강풍 속 선수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3라운드까지 1위였던 조아연과 2위인 매들린 색스트롬(스웨덴)은 이날 무려 9오버파를 기록했다. 결국 3라운드 기준 4위 박희영, 5위 유소연, 12위 최혜진이 최종 합계 8언더파로 연장전에 나서게 됐다.
박희영은 연장 첫 라운드부터 우승 찬스를 맞았다. 두 타 만에 그린에 공을 올려놓은 박희영이 침착하게 세 번째 타에 나섰다. 공이 들어갔을 경우 우승이 결정되는 상황이었지만 아쉽게도 공은 홀 왼쪽을 살짝 돌아 지나갔다. 박희영은 얼굴을 감싸쥐고 아쉬워했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고 승부를 이어갔다. 연장 2차전에서는 유소연이 탈락했고 4차전에서는 최혜진이 티샷을 나무 밑으로 보내는 실수를 하며 박희영이 승기를 잡았다. 박희영은 마지막 퍼팅 직전 웃으면서 공으로 향한 뒤 파를 적어냈다.
2008년 LPGA에 데뷔한 박희영은 2011년 CME 그룹 타이틀홀더스에서 투어 첫 우승을 거뒀고 2013년 7월 매뉴라이프 파이낸셜 LPGA 클래식에서 2승째를 올렸다. 이때만 해도 박희영이 이토록 오랜 기간 무승에 머물 줄은 몰랐다. 그러나 왼손 손목 부상 등으로 슬럼프를 겪은 뒤 지난해에는 상금 순위 110위에 그쳐 투어 출전 자격을 유지하지 못했다.
결국 박희영은 지난 시즌 후 11월 주로 신인들이 경쟁을 벌이는 LPGA Q시리즈(퀄리파잉 토너먼트)에 12년 만에 출전하는 등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Q시리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천신만고 끝에 2020시즌 LPGA 투어 출전 자격을 획득했고 시즌 3번째 투어 대회에서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박희영은 “지난해 최악의 한 해를 보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며 “점수보다는 한타 한타에 집중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