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상훈 윤정희 부부 (7) “아들과 목욕탕 가고 싶다”는 말에 아내는 곧장…

입력 2020-02-11 00:07
하은 하선이가 빠지고 나머지 11명 가족이 자전거를 탔다. 각자 이름이 티셔츠 위에 새겨져 있다.

우리 집 넷째는 요한(17)이지만, 다섯째 사랑(16)이가 먼저 왔다. 셋째 하민(18)이가 언어치료를 받으며 안정을 찾을 즈음인 2007년 내가 별생각 없이 한마디 했다. “아들과 목욕탕 한번 가보고 싶네유.”

이 말에 아내는 바로 다음 날 늘사랑아동센터에 갔고 하민이보다 더 작고 여린 세 살짜리 남자아이를 품에 안고 왔다. 너무 작고 왜소한 아이였다. 우리는 사랑을 많이 받고 또 받은 사랑을 많이 나누어 주라는 의미로 이름을 사랑이라 지었다.

사랑이는 보조 신발을 신고 왔다. 안짱다리로 태어나 12개월 전에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발목에 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걷는 게 부자연스러워 기어 다녔고 걷는 훈련을 계속해야 했다. 아내는 기도하며 ‘사랑이 역시 지극히 정상’이란 응답을 받았다. 우리는 사랑이를 비장애인으로 키우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목욕탕에 갈 때면 꼭 사랑이와 함께 갔다.

하민이의 언어장애를 통해 우리 가족이 하민이를 ‘나와 너’가 아닌 ‘우리’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사랑이의 장애는 ‘아이의 아픔’이 아닌 ‘우리의 아픔’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극복하고 이겨 나가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안짱다리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하다 보니 사랑이의 발목은 부러질 것처럼 가늘었다. 걸을 수 있도록 꾸준히 운동을 시켜주고 따뜻한 물로 계속 마사지해줘야 했다.

승강기가 없는 4층에 살다 보니 사랑이에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절반도 못 올라가 금세 지쳐서는 안아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아내는 “사랑아, 혼자 걸어. 할 수 있어”라고 독려했는데 사랑이는 “어무, 힘드어… 안아져…”라며 안아달라고 했다. 아내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절대로 안아주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일렀다.

온 가족이 사랑이와 걷는 연습을 했다. 세 누나의 응원과 격려와 사랑과 지지가 큰 힘이 됐다. 사랑이는 보조 신발을 벗고 아내와 함께 초등학교 운동장을 꾸준히 걸었다. 나중에는 우리 부부 품으로 뛰어올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폐가 아프던 하선이가 달리기를 할 때처럼, 사랑이가 걸어가는 것만 봐도 행복했다.

잠든 사랑이의 다리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반복했던 기도 역시 들어주셨다. 발목 강화를 위해 쇼트트랙을 시작했는데 강원도 쇼트트랙 초등학생 대표선수까지 지냈다. 지금은 사격으로 종목을 바꿔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다섯째 아들 사랑이를 두고 큰 누나 하은(23)이는 이렇게 소개한다.

“2004년생. 애교 작렬 눈웃음의 일인자 ‘마빡이’. 날마다 눈웃음을 보이며 애교를 부리니 예뻐하지 않을 수 없는 ‘내 새끼’다. 다리가 조금 불편해서 처음에는 보조 신발을 신었는데 이제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가족과 함께 자전거 여행도 한다. 몸의 아픔을 이겨낸 인간 승리가 내 동생 사랑이다. 사랑아, 사랑해. 이겨 줘서 고마워.”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