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부 일군 정주영은 ‘ㅁ’ 쓸 때 아랫부분 굳게 닫았지요”

입력 2020-02-10 04:05 수정 2020-02-10 17:32
필적 전문가인 구본진 변호사가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친일파 송병준의 글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구 변호사는 “글씨가 행간을 침범하는 등 배려심이 거의 없다”며 “이는 친일파들에게서 나타나는 글씨 특징”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필적 전문가 구본진(55)씨가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쌤앤파커스)를 냈다. 필적 관련 서적을 낸 것은 이번이 3번째다. 15년 넘게 이 분야를 연구하며 ‘필적학자’를 자칭하는 그를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만났다. 그는 북·미간 갈등이 고조됐던 2017년 무렵엔 우리 국방부로부터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필적 분석을 의뢰받기도 했다.

필적 전문가라니 묵적을 뒤적이며 돋보기 들고 감정하는 한학자 풍 외모를 연상하는 이들이 많겠다. 한데, 21년간 검사로 일했던 변호사(현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라 그런지 표정엔 날카로움이 숨어 있다. 검사가 어쩌다 필적학이라는 생뚱맞은 분야에 빠지게 됐을까.

“검사 시절, 살인범과 조직폭력배의 글씨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요. 일반인 글씨와는 완전히 달랐거든요. 글씨에 규칙성이 굉장히 떨어져요. 자음도 같은 모양이라도 계속 바뀌고…. 한마디로 충동성을 이기지 못하는 거지요.”

한국의 대학에는 필적학이라는 학문 분과가 없다.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미국 독일 프랑스 중국 일본 등 동서양 다른 나라에서 관련 책을 구했다. 알파벳에 기초한 서구의 필적 이론을 한글에 적용하며 연구했다. 이를테면 알파벳은 글자끼리 이어 쓰는 연면형(連綿型)이 있지만 한글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한글에서 어느 정도를 연면형으로 부를 수 있는지 등 새로운 원칙을 개발해야 했다.

위 사진은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의 글씨다. 구 변호사는 큰부자들에게 보이는 특징이 동그라미 부분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므로 부자가 되고 싶다면 이 부분을 따라 써보라고 제안했다. 김지훈 기자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국내외 유명 인사들의 필적을 모으기 시작한 것도 연구를 위해서였다. 마이클 잭슨이 방한 시 남긴 서명을 200만원에 구입하기도 했다. 필적 컬렉션이 1000점 가까이 된다. 그는 “독립운동가의 경우 필획의 선이 곧으며 각진 글씨가 많다. 또 규칙성이 두드러지며 행간의 간격이 넓다”며 “반면에 친일파들은 둥근 글씨가 많고 행간 간격이 거의 없어 배려하는 마음이 적은 걸 유추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정치인과 연예인의 글씨엔 과시적 성향이 드러나는 반면에 큰돈을 번 사람들의 글씨엔 왜 돈을 버는지 알 수 있는 특징이 드러나 인생이 품성대로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롤 모델의 글씨체를 구해다 따라 써보라고 제안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글씨가 좋다. 그의 경우 ‘ㅁ’의 아랫부분이 굳게 닫혀 있어 절약, 완성, 빈틈없음을 의미한다. 또 모음의 세로획이 유난히 길어 인내심이 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성공한 연예인은 대부분 첫 글자가 매우 크고 마지막 부분을 죽 내리긋는다. 영화배우 송강호 정우성 김혜수, 메릴린 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이 공통적으로 이런 특징을 보여줬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자판을 사용해 글씨를 쓰는 요즘에도 필적학이 유용한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글씨는 소통의 수단이자 인격 수양의 수단입니다. 스마트폰 시대에도 인격 수양의 필요성은 남아 있지요. 한국에서 서를 예, 즉 서예로 본 건 근대에 와서입니다. 그전엔 서도, 서법이라고 했지요. 그 정신을 살려야 합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