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기각됐다. 면죄부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에 집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CNN방송은 “탄핵 정국은 끝났지만 국론 분열은 계속될 것”이라며 “트럼프 진영과 민주당 간 혈투는 대선 정국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상원은 5일(현지시간) 의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기된 두 가지 혐의에 대해 각각 탄핵 표결을 실시했으나 모두 부결됐다. 표결은 호명된 상원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개적으로 ‘유죄(guilty)’ 또는 ‘무죄(not guilty)’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권력 남용 혐의에 대해선 무죄 52표, 유죄 48표였고 의회 방해 혐의는 무죄 53표, 유죄 47표였다. 표결은 25분 만에 끝났다.
상원의원들은 철저하게 당론에 따라 표를 던졌다. 전체 100명인 미 상원은 공화당 53명, 민주당 45명, 무소속 2명으로 구성돼 있다. 두 차례의 탄핵안 표결 중 공화당 소속 밋 롬니 상원의원이 권력 남용 혐의에 대해 유죄를 던진 것이 유일한 이탈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안 부결 직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탄핵 사기극에 대한 우리나라(미국)의 승리”라고 반겼다. 이어 “내일(6일) 낮 12시에 백악관에서 공개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알렸다. 백악관도 성명을 내고 “민주당에 의해 이뤄진 엉터리 탄핵 시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완전한 정당성 입증과 무죄로 끝났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정적인 모든 민주당 상원의원과 한 명의 실패한 공화당 대선 후보만이 조작된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비난했다. 여기서 실패한 공화당 대선 후보는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배했던 롬니 의원을 겨냥한 표현이다.
공화당 소속 중 유일하게 이탈표를 던진 롬니 의원에게는 탄핵 찬반 진영에서 찬사와 경멸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롬니는 탄핵 표결 직전 기자회견을 자처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거를 오염시키는 일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취임 선서 위반 행위”라며 “헌법에 대한 끔찍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인 롬니는 “나는 하나님 앞에서 공정한 정의를 행할 것을 맹세했다”며 “내 신념은, 내가 누군지를 말해주는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한 뒤 감정이 북받친 듯 울먹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자 장내는 순간 숙연해졌다. 그는 “탄핵소추안에 드러난 혐의는 매우 심각한 것”이라며 “제시된 증거를 무시하고, 당파적 목표를 위해 나의 맹세와 헌법의 요구를 외면한다면 역사의 질책과 내 양심의 비난이 나를 괴롭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롬니와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내 오랜 정치적 앙숙이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자 롬니는 당내 반트럼프 진영의 선봉에 섰다. 당시 공화당 주류 세력이자 점잖은 보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에게 트럼프의 등장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는 트럼프를 위선자, 사기꾼으로 정의하며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공격했다. 트럼프 역시 “거만한 멍청이”라고 응수했다. 트럼프에 대한 감정적 앙금으로 탄핵 찬성표를 던졌다는 시선을 의식한 듯 롬니는 과거의 악연 탓에 찬성표를 던지는 게 아니라고 부연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이형민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