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나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남 앞에 잘 나서지 못했다. 공부를 좋아하고 잘했지만 상급학교에 진학을 원치 않는 아버지에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부러운 눈으로 친구들을 바라봐야만 했다. 6년 동안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청년의 진실한 마음에 끌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막상 결혼하니 시댁이 너무 가난했다. 좁은 집에 시누이 시동생 시부모님이 같이 살았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일에 시달렸다.
그런데 정말 힘든 것은 시어머니와의 갈등이었다. 시아버지의 도박으로 전 재산과 집까지 날아갈 지경에 이르자 어머님의 분노는 폭발했고 그 불똥은 매일 내게 튀었다. 결국 우울증에 걸렸고 모든 의욕을 잃었다. 그렇게 힘들게 자책하고 있을 때 이웃 마을 교회 사모님의 권유로 교회에 처음 갔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심해져 정신을 잃고 쓰러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 후 딸아이 진학으로 시내로 이사해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지만 우울과 염려는 계속됐다. 정신을 차려 옷가게, 닭갈비집, 휴대전화 포장, 버섯농장, 떡볶이 노점 등을 하며 몸부림을 쳤다.
그렇게 뒷바라지한 덕에 큰 딸이 의대를 졸업하고 집근처 병원에서 일하게 되니 정말 좋았다. 큰 딸은 작은 딸과 손주, 손녀도 데리고 교회에 다녔다. 나도 따라갔는데 예배가 너무 은혜로웠다. 남편도 딸을 통해 교회에 나가며 얼마 되지 않아 술, 담배를 끊고 제사도 단번에 끊었다. 부활의 말씀이 언젠가부터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내 귀에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겨울 수련회 때 성경의 예언대로 부활의 증거를 통해 믿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됐다. 심근경색으로 몇 번 쓰러져 심장수술을 받은 친정어머니와 뇌종양 수술로 보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염려를 놓지 못했던 이유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임이 비춰지며 내 생명, 내 자식, 내 물질, 다 주님의 것임이 선명해졌다. 바로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얼마 후 어머니가 쓰려져 119 구급차로 옮긴다는 전화를 받았다.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해서 1000명이 넘는 전 성도가 기도하기 시작해 어머니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을 거쳐 며칠 후 퇴원했다. 이 일을 계기로 친정 부모님은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제사를 끊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을 보고 있던 친정 올케도 다니던 절을 버리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매주 함께 예배를 드린다.
매일의 삶이 꿈만 같았고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지자 바로 전도지를 들고 시장으로 달려갔다. 어느 날 천주교가 편해 보인다며 성당에 나가기 직전의 자매를 만나 예수님의 부활을 전해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했고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과일 가게 아주머니도 역시 부활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또 의료기 사업을 하는 실장님을 만나면서 매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시어머니도 절에서 드리던 불공과 굿을 한 순간에 집어 던지고 예수님 자녀가 됐다. 90이 넘으셨는데도 수련회까지 참가하시며 기쁨으로 사시다가 몇 개월 후 평온하게 소천하셨다. 늘 우울하게 살다가 정신병원까지 갔던 나를 살린 것은 부활의 복음이었다. 오늘도 나는, 기쁜 마음으로 주인이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영혼 구원을 위해 대문을 나선다.
김영희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