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3·1운동 101주년과 열애

입력 2020-02-08 04:01

믿음은 마음의 등불이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증거로 아들 이삭을 바쳤다. 모세는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 사무엘 등 수많은 선지자가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빛을 남겼다. 한국 근현대사에도 큰 흔적을 남긴 주의 종들이 많다. 신사참배에 반대했다 순교한 소양 주기철(1897∼1944) 목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광복을 눈앞에 두고 순교한 주 목사는 매년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면 부활한다. 그는 대한제국 광무(光武) 원년인 1897년 경남 마산 웅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이름은 기복. 1912년 겨울, 개통학교를 졸업한 14세 소년 기복은 춘원 이광수를 만나 천지개벽의 순간을 맞는다. “오산학교는 구국의 동량들을 모아 훈육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기백 있는 청년들에게 진학의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날 기복은 오산학교에 입학하기로 했다. 이름도 ‘기독교를 철저히 믿는다’는 뜻으로 ‘기철’로 바꿨다. 성도 주(朱)씨여서 붉은 피로써 기독교 신앙에 목숨을 바치겠다는 의지를 굳혔다. 마침내 기철은 오산학교에서 남강 이승훈의 기독교적 정신과 춘원의 휴머니즘을 배웠다. 고당 조만식이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경건한 신앙적 분위기를 체득했다.

그는 꽃다운 소년의 감수성을 가지고 15세에 오산학교에 입학해 18세에 졸업했다. “헐벗고 굶주리는 백성을 살리는 길, 그 길을 위해서 일하겠습니다.” 기철은 오산학교를 떠날 때 조만식 선생 앞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기철은 1년 만에 갈 길이 아님을 깨닫고 중퇴하고 고향 웅천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꿈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3·1운동 이후 김익두 목사의 마산 지역 사경회에서 기철의 인생은 또 한번 변신한다.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걷기로 한다. 1922년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해 3년 후 12월 30일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는다.

대한제국의 격변기. 일제는 조선 신궁을 세우고 신사참배를 본격적으로 강요했다. 주 목사의 투쟁도 불붙기 시작했다. 주 목사는 이듬해 부산 초량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다. 주 목사는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불황이 세계적으로 파급되자 제직회에서 자신부터 사례비 10원을 덜 받겠다고 했지만, 당일 제직회는 논란 끝에 70원을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 그러나 주 목사는 수개월 동안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않았다. 6년간 목회로 교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주 목사는 갈등과 분열의 상처로 얼룩진 마산의 문창교회를 살리기 위해 당회장직을 내놓았다.

마산 문창교회에서 시무하는 동안 주 목사는 목숨을 걸고 신사참배에 항거했다. 1936년 7월. 불의에 대한 예언자적 항거로 점철된 문창교회에서 목회를 마감하고 마침내 평양 산정현교회로 향했다. 평양신학교 부흥회에서 ‘일사각오(一死覺悟)’란 제목의 설교는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도화선이 됐고 이로 인해 검거됐다. 1939년 대구경찰서에서 풀려나 평양으로 돌아왔지만,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는 신사참배 결의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 목사를 목사직에서 파면했다. 이듬해 주 목사는 ‘다섯 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설교를 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지루한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 노모와 처자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옵소서,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죽음을 앞에 둔 유언기도였다. 일제는 이런 주 목사를 가만두지 않고 체포해 다시 감옥에 가뒀다. 그로부터 4년 후 1944년 4월 21일 오후 9시 47세의 일기로 노모가 꿈에 예견한 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올해는 3·1운동 101주년이자 주기철 목사 순교 76주기다. 국민일보는 다음 달 7일 ㈔조선오페라단과 공동으로 순교한 주기철 목사를 그린 창작 오페라 ‘주기철의 일사각오-열애’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주기철 목사의 신사참배 거부와 순교 과정, 하나님에 대한 그의 순결하면서도 열정적이고 뜨거운 사랑(熱愛)을 오페라로 그려낸 작품을 한국교회가 다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영원한 고난은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지만 곧 생기를 되찾게 될 것이다. 고난이 위력을 발휘할 때는 스스로 무릎을 꿇었을 때뿐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이 순간을 견디자.

윤중식 종교기획 부장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