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생명 걸린 험난한 땅… 금배지 획득 땐 도약의 땅

입력 2020-02-08 04:02
사진=게티이미지

4·15 총선을 앞두고 ‘험지(험난한 땅) 출마’라는 말이 자주 거론된다. 선거판에서 험지는 당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지역이다. 고질적인 지역주의 구도 탓에 여러 지역구가 누군가에게는 험지, 상대에겐 꽃길이 되곤 했다. 선거 때마다 험지 출마로 누구는 웃고 어떤 이는 쓰디쓴 패배의 눈물을 흘렸다. 험지는 위험 부담이 커 ‘사지(死地)’가 되기도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한 사람에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또 험지 출마에는 승패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정치적 명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출마 명분이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으면 승패와 상관없이 도전한 것 자체가 엄청난 정치적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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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한국당 중진 나설까

자유한국당은 수도권을 험지로 규정하고 중진들이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고향 땅 영남보다 수도권이 상대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며 “당의 지도급 인사들이 수도권 험지로 나와줄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향에 안주한다면 정치인으로서의 미래는 아마 닫히게 될 것이고, (험지에 나서는) 살신성인의 자세는 국민을 감동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고향인 영남 지역에서 출마하겠다는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지사 등을 겨냥한 것이다.

이렇듯 지도부가 험지 출마를 강조하는 이유는 승산이 없던 지역에서 선전할 경우 주변 지역 후보들은 물론 당 전체의 사기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험지에서 끝내 이기면 당사자는 그 공을 내세워 당내외 영향력을 크게 키울 수도 있다.

2008년 18대 총선 때까지만 해도 수도권은 한국당의 험지가 아니었다.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한국당 전신)은 서울 지역 48석 중 40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2012년 19대 총선에선 49석 가운데 12석을 얻는 데 그쳤고,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까지 거치면서 수도권은 험지가 됐다. 이렇듯 험지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위험한 만큼 승리 시 성과도 커

정치인에게 험지 출마는 적지 않은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도전에 실패한 뒤 재기가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20대 총선 때 김무성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대표는 부산 지역 출마를 준비하던 안대희 전 대법관을 서울로 끌어올렸다. 안 전 대법관은 민주당 텃밭인 마포갑에 나섰다가 낙선했고, 이후 정치권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험지 출마를 거부해 정치 생명에 타격을 입은 사례도 있다. 20대 총선 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안 전 대법관과 마찬가지로 새누리당으로부터 험지 출마를 요구받았으나 종로 출마를 강행했다. 당시 종로는 같은 당 박진 의원이 내리 3선을 한 새누리당 우세 지역이었다. 김무성 대표가 야당 거물을 상대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오 전 시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서울시장 중도사퇴(2011년)라는 정치적 흠결을 만회하려고 ‘쉬운 길’을 택했지만, 당시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후보(현 국무총리)에게 지고 말았다.

현재 오 전 시장은 서울 광진을에서 설욕을 준비 중이다. 광진을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5선을 한 민주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 즉 한국당의 험지다.

정 총리의 과거 종로 도전도 험지 출마 케이스다. 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에서 4선을 했던 정 총리는 19대 총선을 앞두고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에 밀알이 되겠다”며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호남 기득권 포기 약속을 지키겠다며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당시 정 총리는 종로의 많은 골목을 돌기 위해 작은 승합차를 개조한 유세 차량을 타고 구석구석을 누볐다. 또 동별 상세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는 등 ‘현미경 선거운동’을 펼쳐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지원을 받은 홍사덕 전 의원을 꺾었다. 이어 20대 총선에선 오 전 시장의 낙승을 예상한 여론조사 결과를 뒤엎고 재선에 성공했다. 정 총리는 이를 발판으로 20대 국회의장을 거쳐 총리까지 됐다.


‘지역주의 타파’ 기치로 성공하기도

험지 출마로 가장 드라마틱한 효과를 거둔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1988년 부산 동구에서 처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번번이 낙선했던 노 전 대통령은 1998년 종로 재보궐 선거에 나와 승리했다. 당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막판에 종로 출마를 포기하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정치적 도박을 감행했다. 당선에 유리한 종로를 버리고 패배를 거듭했던 부산을 택한 것이다. 그는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며 부산으로 내려갔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호남 출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지역감정을 앞세우면서 노 전 대통령은 다시 패배의 쓴맛을 봤다.

하지만 그 패배가 새로운 역사의 씨앗이 됐다. 지역주의에 도전한 ‘바보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그해 6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탄생했다. 험지(종로)를 피한 이 전 총재와 달리 험지(부산)에 도전한 것이 2년 후 이 전 총재와 맞붙은 16대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을 웃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노 전 대통령처럼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험지 출마를 감행한 이는 더 있다. 민주당에선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처음 당선된 김부겸 의원이다. 경기 군포에서 3선을 했던 김 의원은 19대 총선 때 대구에 출마해 이한구 전 의원에게 패했으나 4년 뒤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꺾고 당선됐다.

보수정당에선 호남에 처음 깃발을 꽂은 이정현 의원이 성공 사례다. 전남 곡성 출신인 이 의원은 1995년부터 보수정당 타이틀로 호남에 출마해 왔다. 그는 2014년 순천·곡성 재보궐 선거에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서 당선됐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현재 무소속인 이 의원은 이번엔 종로에 도전한다.

김나래 심우삼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