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보수 청년 단체인 ‘전대협’ 소속 김모(25)씨가 단국대 천안캠퍼스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얼굴이 인쇄된 대자보에는 ‘나(시진핑)의 충견 문재앙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과시키고 총선에서 승리한 후 미군을 철수시켜 완벽한 중국의 식민지가 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종의 패러디 대자보다.
김씨에 대해 경찰은 건조물침입죄로 입건했고, 검찰은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사람이 관리하는 주거 이외의 건물과 그 위요지(圍繞地) 등에 무단 침입한 경우에 건조물침입죄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형법 제319조 제1항). 공개된 건물에 들어가는 것은 원칙적으로 건조물침입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단국대 천안캠퍼스는 공개된 장소다. 단국대 학생과 교직원은 물론 타교 학생과 교수, 정치인, 언론인, 동네주민, 영업사원 등 다양한 사람이 아무런 제약 없이 오가는 곳이다. 경찰은 학교 측의 신고가 들어와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 측은 ‘경찰이 정부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해 업무협조 차원에서 알려준 것’일 뿐 피해를 입은 사실이 없고 범죄를 신고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경찰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정상적인 활동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가지고 무단으로 들어가면 건조물침입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대학은 교수가 자유롭게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발표 및 교수하는 장소일 뿐 아니라 다양한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곳이다. 친정부 대자보를 붙였더라도 건조물침입죄로 입건할지 의문이다. 마찬가지로 정부와 그 정책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인 것에 대해 학교에서 일어나는 정상적인 활동이 아니라고 단정할 일이 아니다.
공직자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 표현은 폭넓게 보호된다. 정부나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이나 업무 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이나 업무 수행과 관련된 비판으로 인해 공직자 개인의 명예가 다소 저하된다 하더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다(대법원 2010도17237 판결). 나아가 공무 집행과 직접 관련 없는 공직자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비판까지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되지 아니하기도 한다. 공직자의 자질·도덕성·청렴성에 대한 자료가 될 수 있고 공무 집행의 적법성·정당성·적절성 등에 대한 판단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헌재 2009헌마747 결정). 경찰은 김씨가 게시한 대자보의 내용을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건조물침입죄로만 입건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공직자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명예훼손의 범위를 제한해 해석하는 것은 헌법 제21조 제1항의 표현의 자유가 개인의 인격적 발현과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민주적 의사형성 과정에서 본질적 의미를 가지는 기본권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패러디 대자보 부착 행위를 명예훼손으로 처벌하지 않는 것과 같이 그 ‘표현의 자유’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패러디 대자보를 부착하려고 대학 캠퍼스에 들어간 행위를 건조물침입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할 때, 사울의 친족 시므이가 저주하였다. 주위의 장군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 다윗 왕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고 하면서 그를 살려준다(사무엘하 16장 11절). 반란이 진압된 다음, 시므이를 죽이자는 장군들의 청을 거절하면서 시므이에게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고 맹세한다(사무엘하 19장 23절).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이유다. 모름지기 공직자는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비판을 수용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어야 한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