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사역했던 도시 고린도의 시간 속으로

입력 2020-02-07 00:05
그리스에 있는 고린도 유적지 모습. 사진 가운데의 포장된 도로로 마차와 수레가 오갔다. 게티이미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고린도는 로마제국때 번화한 도시였지만, 지금은 그리스에 유적으로만 남아있다. 대극장으로 사용됐던 곳에 라틴어 비문이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에라스투스가 조영관(고대 로마의 공공건물 도로 시장 등을 관장하던 공무원) 직분을 얻기 위해 자비로 이 도로를 포장했다.”

에라스투스는 신약성경의 바울 서신에 등장하는 ‘에라스도’다. 사도 바울은 에라스도에게 문안하며 그를 ‘이 성의 재무관’이라 표현한다.(롬 16:23) 이는 그리스어 ‘오이코노모스 테스 폴레오스’(이 도시의 조영관)를 번역한 것이다.

신약학자로 그리스 터키 이스라엘 등을 수차례 답사한 저자는 유적과 성경의 내용이 일치하는 것에 주목한다. 로마시대 조영관은 공공시설의 건축과 운영을 책임지는 고위직 공무원이었다. 공공시설엔 그리스 신들을 숭배하는 신전도 포함됐다. 사도 바울의 지도를 받던 고린도교회 소속 그리스도인 에라스도는 업무와 신앙의 괴리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이 같은 궁금증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저자는 조영관 선거를 앞둔 부자 그리스도인 에라스도 가문 이야기로 로마의 정치·노예 제도, 잔치 및 특유의 목욕탕·검투사 문화 등을 풀어낸다. 특히 1세기 도시문화를 자세히 묘사한다. 도시의 빈부격차, 먹자거리와 상수도 시설을 설명하는 부분만 보면 1세기와 현대가 큰 차이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책에서 저자는 소설 형식을 빌려 당대의 사회·문화상을 담아냈다. 에라스도란 실존 인물을 뼈대로 삼고, 현재까지 발굴된 역사적 사실로 살을 보탠 셈이다. 에라스도의 하인이자 동업자인 니가노르, 귀족 출신의 정적 아이밀리아누스는 주요인물로 등장하지만 허구의 존재다. 니가노르가 일주일간 고린도에서 에라스도의 조영관 선거를 돕다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 게 주된 내용이다.

저자는 등장인물이 빚어내는 갈등 한복판에 바울 및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등장시킨다. 성경 속 등장하는 이들의 사역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로마시민권자 바울은 고린도 레카이온 도로의 한 상점에서 염소 가죽으로 겨울용 외투와 포도주 부대, 혁대, 천막 등을 만들며 생계를 잇는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동업자이자 바울의 가정교회 사역을 돕는 동역자로 나온다. 책에는 바울이 고린도 거주 유대인 공동체의 고소로 재판을 받는 과정도 등장한다.(롬 18:12~17)

성찬과 푸짐한 식사, 회중 찬송, 웅변, 예언 등으로 구성된 초대교회 예배도 자세히 소개된다. 이 자리에선 노예도 주인과 동등한 자격으로 식사하며 기도했다. 신분사회의 벽을 넘어서는 축제의 장이었던 셈이다. 구한말 양반과 상민이 한 자리에서 예배드렸던 모습이 떠오른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노예든 자유인이든 온전히 사랑으로 하나 됐던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한국교회가 나가야 할 모습을 볼 수 있다. 성경을 실감 나게 읽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교회에 지향점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