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된 병원 2곳서만 291명 접촉… 16번, 슈퍼 전파자 우려

입력 2020-02-06 04:00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서울 성동구 보건소를 방문해 신종 코로나 대응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날이 추워 안경에 김이 서려 있다. 문 대통령은 현장 의료진과 공무원들을 격려하면서 “정말 얼마 안 되는 인력으로 총력 대응하고 있는데 계속 감당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 번에 여러 명을 감염시키는 이른바 ‘슈퍼 전파자(super spreader)’가 광주에 출현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밀폐된 의료기관에서 동시에 여러 명을 감염시키는 사람’이라는 보건 당국의 정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 16번째 환자에게 부합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진 2015년에 준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5일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태국 여행 도중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16번 환자(42세 한국인 여성)는 지난달 25일 발병 후 최소 306명을 접촉했다. 18번째 환자로 확진된 딸의 간병과 자신의 폐렴 치료를 위해 광주21세기병원에 1주일가량 머물러 이곳에서만 272명의 접촉자를 냈다.

16번 환자는 신종 코로나로 의심돼 전남대병원도 두 차례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19명의 추가 접촉자를 양산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브리핑에서 “환자가 전남대병원 응급실에서 선별진료를 받아 접촉자가 19명밖에 생기지 않았다”고 했지만 초기에 걸러지지 않아 되레 추가 접촉자를 낸 셈이다.

보건 당국은 지금까지 발생한 환자가 대부분 가족이나 지인 등 가까운 사이에서 1~2명 수준이기 때문에 슈퍼 전파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의료기관에 장시간 머문 16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 본부장은 “광주21세기병원이 정형외과이다 보니 고령의 만성 기저질환자보다는 급성기의 수술 후 회복 단계에 있는 환자가 대부분”이라면서도 “(16번 환자가) 외래진료도 받아 외래진료를 왔던 환자들까지 (접촉자) 명단을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국내 의료진 가운데 확진환자가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보건 당국은 이날 오전 10시 기준 조사 대상 유증상자로 격리돼 감염 여부 검사를 받고 있는 174명 가운데 의료진이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16번 환자의 사례를 예의주시했다. 병원 중심으로 빠르게 번진 메르스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광주21세기병원이 100병상이 안 되는 병원이라 감염관리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의료진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환자, 방문객이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가족 간 감염에서 병원 감염까지 지금의 신종 코로나 진행 양상이 메르스 때와 꽤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16번 환자가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병원에 다녔을 것이어서 환자가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고 다른 환자에게 얼마나 노출됐는지가 중요하다”며 “(16번 환자의 경우가) 메르스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부는 16번, 18번 환자가 입원했던 병실이 있는 광주21세기병원 3층 환자들을 5, 6층으로 분산 배치했다. 기존 5, 6층 환자들은 격리 조치했다. 이 병원엔 의료진 70여명과 입원환자 80여명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다만 병원을 통째로 격리하는 ‘코호트 격리’는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 본부장은 “코호트(격리)보다 낮은 수준이 아닌 더 안전한 방법으로 격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