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5일 청와대 하명수사·선거개입 사건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공소장 내용을 바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장했던 추 장관은 이날 “공소장 전문 공개는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결정이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왔다.
추 장관은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의원실에서 자료를 요구하고 곧바로 언론에 공소장 전문이 공개됐다. 더 이상 잘못된 관행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재판 절차가 시작되면 공개된 재판에서 공소장의 세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민주당은 국정농단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 적폐청산 국면에서 공소장을 적극 활용했다. 언론을 통해 공개하거나 공식석상에서 공소장 내용을 언급하며 개혁 여론을 조성했다. 추 장관도 당대표였던 2016년 검찰이 국정농단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곧바로 최서원(최순실)씨 공소장에 박 전 대통령이 공동정범으로 적시된 사실을 언급하며 “현직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공소장에 적은 건 헌정 사상 처음이다. 대통령 탄핵소추 법적 요건이 형성됐다”면서 탄핵을 주장했다. 이후 의원총회와 최고위원회의 등 공개적인 자리에서 “검찰이 빼곡한 글씨로 서른 장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을 공동정범, 때로는 주도적으로 지시한 피의자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공소장을 다시 읽어보길 바란다. 공동정범 또는 주범으로 적시돼 있다”며 거듭 공소장을 강조했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도 당시 “이영렬 특별수사본부장은 국민 앞에 낱낱이 공소장을 아뢰었어야 한다”고도 했다.
여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의원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관례대로 공개해 왔고, 공개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공개재판이 원칙이고 의회에서도 수사와 기소가 공정하게 이뤄졌는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의원도 “국민들이 보고 있다. 모든 것은 과유불급”이라며 “검찰 개혁의 본질을 잘 봐야 한다. 본질이 아닌 문제로 자꾸 검찰과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보수 야당은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당하고 숨길 게 없으면 왜 비공개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중도 정당 창당을 선언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떳떳하면 숨기지 않는 게 상식 아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은 이날 울산시장 관권선거 의혹 사건에 대한 고발인 자격으로 법원에 공소장 열람·등사 신청을 했다. 법원이 이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관련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법조계뿐 아니라 친여권 성향의 참여연대도 부정적 입장을 내놨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이번 사건은 현 정권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개별 민간인에 대한 사건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공적인 사건에선 무엇보다 국민의 알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갑자기 이번부터 공개를 안 한다는 건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을 의식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참여연대도 이례적으로 “법무부가 내놓은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 보호’라는 비공개 사유는 궁색하기 그지없다. 기존 관례와도 어긋나고 국민의 알권리와 이 사건에 대해 판단할 기회를 제약하는 것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을 냈다. 법무부에서도 일부 참모들이 비공개 결정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추 장관 결정에 맞장구를 쳤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법무부에서 규정에 따라 결정했고 그 사안에 대해 청와대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가현 김경택 허경구 박재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