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땐 공소장 활용하더니… 추미애 “공개는 잘못된 관행”

입력 2020-02-06 04:02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이형석 최고위원(왼쪽부터)이 5일 최고위원회의를 열기 위해 국회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신종 코로나 대응을 위해 여야가 총선 준비와 정치 일정을 잠정 중단하고 국회를 열자고 촉구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5일 청와대 하명수사·선거개입 사건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공소장 내용을 바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장했던 추 장관은 이날 “공소장 전문 공개는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결정이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왔다.

추 장관은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의원실에서 자료를 요구하고 곧바로 언론에 공소장 전문이 공개됐다. 더 이상 잘못된 관행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재판 절차가 시작되면 공개된 재판에서 공소장의 세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민주당은 국정농단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 적폐청산 국면에서 공소장을 적극 활용했다. 언론을 통해 공개하거나 공식석상에서 공소장 내용을 언급하며 개혁 여론을 조성했다. 추 장관도 당대표였던 2016년 검찰이 국정농단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곧바로 최서원(최순실)씨 공소장에 박 전 대통령이 공동정범으로 적시된 사실을 언급하며 “현직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공소장에 적은 건 헌정 사상 처음이다. 대통령 탄핵소추 법적 요건이 형성됐다”면서 탄핵을 주장했다. 이후 의원총회와 최고위원회의 등 공개적인 자리에서 “검찰이 빼곡한 글씨로 서른 장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을 공동정범, 때로는 주도적으로 지시한 피의자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공소장을 다시 읽어보길 바란다. 공동정범 또는 주범으로 적시돼 있다”며 거듭 공소장을 강조했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도 당시 “이영렬 특별수사본부장은 국민 앞에 낱낱이 공소장을 아뢰었어야 한다”고도 했다.

여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의원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관례대로 공개해 왔고, 공개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공개재판이 원칙이고 의회에서도 수사와 기소가 공정하게 이뤄졌는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의원도 “국민들이 보고 있다. 모든 것은 과유불급”이라며 “검찰 개혁의 본질을 잘 봐야 한다. 본질이 아닌 문제로 자꾸 검찰과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보수 야당은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당하고 숨길 게 없으면 왜 비공개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중도 정당 창당을 선언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떳떳하면 숨기지 않는 게 상식 아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은 이날 울산시장 관권선거 의혹 사건에 대한 고발인 자격으로 법원에 공소장 열람·등사 신청을 했다. 법원이 이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관련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법조계뿐 아니라 친여권 성향의 참여연대도 부정적 입장을 내놨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이번 사건은 현 정권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개별 민간인에 대한 사건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공적인 사건에선 무엇보다 국민의 알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갑자기 이번부터 공개를 안 한다는 건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을 의식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참여연대도 이례적으로 “법무부가 내놓은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 보호’라는 비공개 사유는 궁색하기 그지없다. 기존 관례와도 어긋나고 국민의 알권리와 이 사건에 대해 판단할 기회를 제약하는 것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을 냈다. 법무부에서도 일부 참모들이 비공개 결정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추 장관 결정에 맞장구를 쳤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법무부에서 규정에 따라 결정했고 그 사안에 대해 청와대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가현 김경택 허경구 박재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