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추미애 장관, 이렇게 막가도 되나

입력 2020-02-06 04:01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 사건 관련 공소장 공개를 거부한 것을 놓고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추 장관은 법무부 간부들이 만류했지만 “내가 책임지겠다”며 공개 거부를 지시했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책임지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작정하고 법을 무시하려는 태도다. 국회법 128조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군사 외교 안보 등 중대한 국가 기밀이 아니면 국가기관은 국회의 자료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추 장관은 법무부 훈령에 불과한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을 들어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았다. 판사 출신인 추 장관이 상위법 우선 적용 원칙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국회를 통한 공소장 공개는 노무현정부 때인 2005년부터 실시됐다.

추 장관의 공개 거부에 대해 친여 성향의 참여연대조차 논평을 내고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와 판단할 기회를 제약하는 것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며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 보호라는 비공개 사유는 궁색하기 그지없다”고 지적했다. 70여장의 공소장에는 청와대 전현직 관계자 등의 범죄 혐의가 낱낱이 적시돼 있다. 반면 법무부가 공소장 대신 보낸 4장의 공소요지는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생략된 요약본이다. 고위 공직자 등 유력 인사가 연루되거나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의 공소장을 국회를 거쳐 예외 없이 공개해오던 관행을 갑자기 중단한 의도는 뻔하다. 총선을 앞두고 공소장 내용이 공개될 경우 민심이 나빠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추 장관이 이렇게 무리하게 총대를 메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만에 하나 친문 세력의 지지를 얻어 차기 정치 행보를 하려는 것이라면 큰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찬성과 돌출 행동 등으로 인해 좁아진 여권 내 입지를 만회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아무리 친문 세력의 지지가 필요하더라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국민을 무시하고 우롱하면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미래는 없다.

추 장관은 검사들에 대한 좌천 인사를 검찰총장과 협의 없이 추진하는 과정에서 “검찰총장이 내 명을 거역했다”고 말해 논란을 빚는 등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계속하고 있다. 공소장 내용은 재판이 시작되면 어차피 알려질 수밖에 없고 이미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즉각 공소장 원본을 국회에 보내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추 장관이 계속 거부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를 지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