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하선(22)이 덕분에 우리 부부는 목회자 가정이 되고 신장도 기증했다. 하선이는 폐쇄성 모세기관지염이란 질병으로 한쪽 폐가 못쓰게 됐는데도 소생했다. 치료엔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현금이 부족해 건설사 현장소장 시절 보유한 31평 아파트를 팔았다.
하선이가 서서히 회복한 후 국가에서 만 18세 이하 입양 아동들에게 의료보험 1종을 부여해 병원비를 면제해 주는 제도가 생겼다. ‘미리 좀 만들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아파트 한 채 값으로 하선이의 목숨을 살린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환하게 웃기까지 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임을 깨달았다.
하선이는 언니 하은(23)이와 함께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이수하고 1등급 성적을 받아 대학 간호학과를 졸업했으며 이제 강릉 아산병원 출근을 앞두고 있다. 글 쓰는 게 취미인 언니 하은이는 동생 하선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효리를 닮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얼굴이 예쁘지만, 여간해서는 집안일을 돕지 않는 ‘왕뺀질이’. 동생들 데려오자고 부추겨 놓고는 정작 돌보는 일은 내게 미룬다. 하지만 어디서나 당당하고 대찬,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동생이다. 어릴 적에 아주 아파서 엄마 아빠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 이제 정말 씩씩하고 건강해졌다. 간호사가 돼 동생들을 지원해 주고 엄마 아빠의 노후를 책임지겠다고 큰소리 빵빵 치고 있다.”
우리 가족은 2011년 강원도 강릉으로 이사 왔다. 내가 먼저 강릉중앙감리교회 파송 강릉아산병원 원목으로 오게 됐고 아내가 대전의 공부방을 돌보고 난 후 합류했다. 아이들이 건강해지면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주변을 둘러봤다. 아내는 독거 어르신 열 분에게 반찬을 만들어 배달하는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이주여성까지 포함해 추석을 맞아 전과 송편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수중에 돈이 없었다. 이사 와서 교회에서 받은 첫 사례금은 첫 열매로 드리고, 그다음 달 사례금은 병원교회 장애우에게 드리고 나니 우리 집 재정은 늘 바닥이었다. 아내는 50만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엎드려 기도했다. 이때 하선이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가 이런 말 안 하려 했는데….”
“안 하려 했으면 하지마. 엄마 지금 정신없이 기도하잖아.”
“엄마, 유치원생도 엄마처럼 기도 안 해. 아빠 들어봐.”
하선이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무릎 사이에 박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가 한 기도를 그대로 읊조렸다.
“아부지, 50만원만 줘. 아부지, 아부지, 이번에 50만원만 주면 내가 앞으로 돈 달라고 안할게. 아부지, 50만원.”
온 가족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아내는 간절함으로 기도했는데, 하선이가 흉내 내니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었다.
“엄마, 여기 50만원이야. 이걸로 해. 하은 언니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기 전에 가진 걸 전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했는데, 나는 좀 아까워서 언니랑 같이 못 했어. 그런데 엄마를 보면서 이 돈을 독거 어르신 반찬 나르는 데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엄마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이 돈으로 해.”
주님은 우리 가족을 당신 품에 안고 계셨다. 웃음에 이어 이번엔 온 가족이 눈물을 흘렸다. 독거 어르신 반찬 나눔은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