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에서 16.3%로’.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다. 2003년 세계경제의 4.3% 수준이던 중국 GDP는 1조6711억 달러(약 1671조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한국의 GDP(추정치 1조6566억 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당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중국에서 시작돼 홍콩으로, 이어 37개국 이상으로 전파되면서 한국에서도 마스크 쓰기와 손씻기 열풍이 불었다.
17년이 흐르는 동안 중국의 몸집은 달라졌다. GDP 규모는 14조1401억 달러(약 1경6788조원)로 10배 가까이 불어났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3%로 4배 가까이 커졌다. 그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이라는 새로운 감염병이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2003년 사스 사태 당시의 추이로 신종 코로나 파장을 가늠하고 있다. 다만 고려해야 할 변수가 있다. 바로 중국의 커진 덩치와 글로벌 경제·사회의 변화 크기다.
그때의 내가 아니야
사스 사태 때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더불어 10%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중이었다. 사스는 2002년 12월 시작돼 6개월 넘게 지속됐다. 교역 축소 여파로 중국의 2003년 2분기 GDP 성장률은 전 분기보다 2.0% 포인트 쪼그라들었다. 그해 5월 산업생산도 1.2% 포인트 줄었다. 20% 안팎을 오가던 세계 각국의 대(對)중국 수출 증가율은 3.5%로 미끄러졌다. 50%를 넘나들던 한국의 중국 수출 증가율도 그해 27.5%로 최저치를 찍었다.
2020년 현재 중국은 무역·소비·자원 생산 등을 견인하는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변모했다. 전 세계 공급망에 미치는 파장도 차원이 다르다. 애플은 중국 내 폭스콘 공장의 아이폰 생산라인 가동을 오는 9일까지 중단했다. 애플스토어 42곳도 임시 폐쇄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중국 내 가전제품 생산공장의 문을 임시로 닫은 상태다. 이케아,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 글로벌 기업도 중국 내 영업을 중단하거나 축소했다. 블룸버그는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소비자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사스 사태보다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 워릭 매키빈 호주국립대 교수는 “세계경제의 충격 규모가 1600억 달러(191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5.9~6.0%다. 신종 코로나 때문에 이 숫자는 더 떨어질 수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보고서에서 “신종 코로나 사태로 중국 성장률이 기존 전망보다 1.2% 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예측이 현실화한다면 6% 안팎 성장률이 4%대로 주저앉게 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기 둔화 상황에서 그나마 소비에 의존하던 중국 경제가 신종 코로나로 도전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경제성장률이 1% 포인트 내리면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률은 최대 0.3% 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복병이 된 SNS·저금리
전 세계로 확산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신종 코로나 공포’의 복병으로 떠오른다. 소셜미디어 등에 퍼진 음모론과 가짜뉴스는 경제 주체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어떤 뉴스든 (SNS 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신속하게 전달되면서 소비자심리에 악영향을 미칠 소지가 크다”고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4일 신종 코로나 대응회의에서 “실제보다 과장된 공포와 불안은 우리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 공포가 정점에 이른 시기에 금융시장이 본격 반등을 시도할 것으로 내다본다. 사스 당시 코스피지수가 최저점(515.24)을 찍은 2003년 3월 17일은 국립보건원이 ‘사스주의보’를 발령한 바로 다음 날이다. 이후 등락을 거듭했지만 사스 사태가 마무리된 그해 6월 말 코스피지수는 660선을 웃돌며 30%가량 반등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하와 중국 정부의 적극적 재정·통화정책이 경기 부양 기대감을 높인 덕분이었다. 키움증권 리서치센터는 “이번에도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내수 부양 정책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금융시장은 신종 코로나 발(發) 금리 인하 카드의 등장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중국 경제 의존도가 2003년보다 높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금리에도 하방 압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17년 전과 비교해 보폭은 좁아졌다. 길어진 저금리 상황이 발목을 잡는다. 2003년 5월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연 4.00%였다. 현재는 역대 최저치인 연 1.25%에 턱걸이했다. 15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와 들썩이는 부동산 시장은 불안 요소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1.50%로 내렸던 한은이 ‘2월 기준금리 인하설’에 조심스러운 이유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