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여야, 이번에도 ‘법조인 영입’ 경쟁

입력 2020-02-05 04:05
자유한국당의 총선 인재로 영입된 박소예·홍지혜·김복단·전주혜·정선미·유정화·오승연 변호사(왼쪽부터)가 4일 국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법조인 과잉’ 논란이 21대 총선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영입 인재 15명 중 법조계 출신은 5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박근혜정부의 ‘사법 농단’과 연관된 현직 판사 영입으로 ‘법복 정치인’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이에 질세라 ‘법조인 주류 당’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자유한국당도 4일 법조인 7명을 영입했다. 정치권에선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은 소병철 전 대구고검 검사장을 필두로 판사 2명, 변호사 2명을 영입했다. 이소영, 홍정민 두 여성 변호사는 환경과 경제 분야 전문가를 자임했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 의혹 폭로에 일조한 이탄희 전 판사와 이수진 전 판사는 영입 직전 법복을 벗고 국회로 직행해 비판이 거세다. 민주당은 20대 국회 때부터 법조인 비중이 커지고 있다. 소속 의원 129명 중 21명이 법조인으로, 숫자만 보면 한국당보다 많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법조인 출신이 너무 많고 국회를 과(過)대표한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검찰 개혁 동력을 이어가고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번에도 다수의 법조인을 영입했다.

한국당이 총선을 앞두고 외부에서 수혈한 15명의 인재 중 법조인은 7명이다. 황교안 대표가 이날 직접 소개한 전주혜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 판사 출신으로 성희롱 의혹 대학교수가 해임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대학 측 변론을 맡아 승소를 이끌어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혼 후 양육비를 주지 않는 전 배우자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한 ‘배드 파더스’ 사이트 운영자의 명예훼손 혐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낸 홍지혜 변호사도 영입됐다.

현재 한국당 의원 108명 중 법조인 출신은 17명이다. 특히 한국당은 지도부에 법조인 출신이 많아 국회의 국민 대표성을 왜곡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럼에도 한국당에서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법조인 출신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논란 등 대여 투쟁 동력이 검찰 수사로부터 비롯되는 상황이라 법조인 출신 의원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당내 저격수로 활동하고 있는 곽상도, 주광덕 의원 모두 검사 출신이다.

새로운보수당도 이날 영입인재 1호로 김웅 전 부장검사를 입당시켰다. 정의당에선 지난해 10월 영입한 권영국 변호사가 이날 경북 경주 출마를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된 이탄희·이수진 전 판사와 소병철 전 검사(사진 왼쪽부터).

법조계 인사들이 이번에도 몰린 까닭은 정치권과 법조계의 공생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동시에 최고 지점에서 딱 맞물리는 타이밍이 지금”이라며 “여야는 자기들 주장에 동조하는 법조계 인사들을 끌어들이고, 기회만 되면 정치권에 가려는 판검사와 변호사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꼴”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법조인 출신들의 21대 국회 입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정치권에선 이들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을 놓고 각 당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싸우고, 고소·고발전을 도맡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수처법이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대해 각 당의 입장을 대변할 사람을 서로 영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과연 그렇게 해서 성공적인 국회를 만들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래 심우삼 신재희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