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금지 확대” 여론 압박에… 정부, 묘수찾기 고심

입력 2020-02-04 18:31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신종 코로나 대응 국무회의를 열기 전 이시종 충북지사, 이재명 경기지사, 양승조 충남지사(왼쪽부터)와 대화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날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중국 우한 교민들의 생활을 지원하고 있는 정부합동지원단 박성식·전상률 단장에게 전화해 격려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국무조정실 제공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과 관련해 현재 중국 후베이성으로 제한된 입국금지 대상 지역을 확대하는 문제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입국금지 대상 지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측이 대상 지역 확대 가능성에 반대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5일 열리는 신종 코로나 관련 당정청협의에서도 이 문제가 심도 깊게 논의될 전망이다.

입국금지 조치를 중국 전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국회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중국 전역을 방문한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제한해야 한다”며 “늑장대응과 부실대응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의견은 범보수권인 새로운보수당은 물론 범여권인 정의당에서도 나온다. 또 대한의사협회 등 전문가 단체들도 입장문을 통해 입국금지 지역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상희 신종 코로나 대책특별위원장이 지난 3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신종 코로나가 우한을 넘어 전체적으로 확산하고 있으니 필요하다면 입국금지 조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게 대표적이다. 여당으로선 총선을 두 달여 앞둔 상황에서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4일 “신종 코로나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할 경우 총선 때 자칫 악재가 될 수 있어 입국금지 확대 등 여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정치권과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정부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일단 중국인 또는 중국 전역에 대한 전면적 입국금지를 시행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입국금지 대상·지역 확대 문제는) 아직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국금지 조치가 강화될 경우 올 상반기 중으로 추진되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정부로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한국의 제한적 입국금지 조치에 대해 우회적이면서도 명확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서울 중구 소재 대사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취한 조치에 대해 제가 평가하지 않겠다”면서도 “가장 과학적이고 권위적인 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에 근거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 앞에서 (한·중은) 사실상 운명공동체”라며 “서로 이해하고, 역지사지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싱 대사의 발언은 한국 정부가 현재 시행하고 있는 후베이성 체류·경유 외국인의 입국금지 조치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입국금지 지역이나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앞서 WHO는 지난달 30일 신종 코로나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도 발병지인 중국에 대한 여행과 교역 제한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런 논란에 대해 “중국과의 외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우리 국민의 안전에 우선할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승욱 이상헌 신재희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