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양심에 맡긴 자가격리… 벌금내고 못하겠다면 그만

입력 2020-02-05 04:02
16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확진환자가 거쳐간 광주광역시의 한 병원에서 4일 병원 직원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4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진환자와 접촉한 사람을 자가격리하기로 했지만 스스로 시행하지 않으면 강제할 수 없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하루 2번 전화로 시행 여부를 확인하는 게 전부이고 거부하고 집밖을 나가도 벌금만 내면 된다. 단칸방에 사는 저소득 가구는 자가격리 자체가 불가능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4일 오전 10시 기준 신종 코로나 확진환자 16명과 접촉한 사람은 총 1318명이다. 전날까지 361명이던 12번 확진자의 접촉자가 이날 666명으로 폭증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중 1번 환자와 접촉한 45명은 신종 코로나 최장 잠복기인 14일이 지나 전날 0시 기준으로 감시 해제됐다. 이날 1명의 추가 확진자가 발생해 접촉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동안 밀접접촉자와 일상접촉자로 구분해 밀접접촉자에 한해서만 14일 자가격리를 시행한 정부는 이날부터 ‘접촉자’로 일원화해 전원 자가격리 조치했다. 기존 일상접촉자였던 일부도 자가격리 대상으로 분류돼 이날 격리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소장 명의로 ‘자가격리명령서’를 받은 사람은 14일 동안 집에만 머물러야 한다. 이를 어기면 3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벌금을 내더라도 밖에 나가겠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보건소에서 자가격리 대상자에게 하루 2번 확인전화를 하는 게 전부여서 사실상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셈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날 페이스북에 격리조치 거부 사례를 2건 공개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현황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중수본 부본부장인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브리핑에서 “어제까지 파악한 거부 사례는 없었다”고 했다가 “지난 2일 중수본 회의에서 경기도의 벌칙 강화 요구가 있었다”고 정정했다. 일각에선 강제격리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정부는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단칸방에 사는 저소득층에는 자가격리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자택에 머물러도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가격리 대상 자영업자나 직업이 없는 무직자, 저소득층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직장인의 경우 휴업수당이 지급된다.

신종 코로나 ‘사례 정의’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격리검사를 받으려면 ‘중국에 다녀온 지 14일 안에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이 있어야만 한다. 중국 외 지역 입국자나 근육통, 오한 증상은 제외된 상태다.

16번째 확진자는 중국이 아닌 태국을 다녀왔고, 귀국 직후에 오한 증상만 있어 국내 검역망에 걸리지 않았다. 12번 확진자 역시 일본에서 감염돼 한국으로 들어왔고, 기침 없이 근육통만 보여 조기에 격리되지 않았다. 8번 확진자도 중국 우한에서부터 증상이 있다고 느껴 입국 뒤 병원에 갔지만 호흡기 질환이 아니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신종 코로나 감염자로 의심하지 않았다.

의학계에선 신종 코로나 사례 정의를 빨리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현재 신고자 기준에는 발열과 호흡기 증상만 포함돼 있는데, 확진자에게서 근육통이나 오한 등 다른 증상들이 같이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사례 정의에 대한 것은 재검토를 진행하고 있으며 곧 최종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